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를로스 안 Aug 10. 2022

1. 이별통지

주머니 속의 진동소리에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귄 지 2개월이 된 여자 친구 K에게 온 카톡이었고, 내용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였다.


오빠는 좋은 사람인데 우리는 맞지 않는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연애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카톡으로 이별 통보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사권 지는 두 달 밖에 안되었지만 그전부터 선후배로 지냈었고, 캠퍼스 커플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느낀 사귐의 시간은 훨씬 더 길었다. 이렇게 두세 문장의 짧은 글로 K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첫 번째 전화를 했지만 K는 받지 않았고, 두 번째 통화음이 거의 끝나갈 때 전화를 받았다. K는 전화 너머에 존재했지만, 말이 없는 그녀의 무거운 침묵 앞에서 벌써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어렵게 먼저 입을 열었고, 분명히 차인건 나인데 K를 위로했다. 한 달 후에 나는 대만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 있었고, 다녀오면 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될 텐데 그때는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커플로 만나면서 느꼈을 부담이 있었을 거라고,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위로하고 어색한 침묵을 이기지 못해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때부터 실연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그때부터 일상은 완전히 멈추었다. 왜, 도대체 왜, K가 나를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밤에도 왜라는 질문에 매몰되어 불면에 시달렸다. 모든 슬픈 노래가 나를 말하는 거 같았다. 길을 걷다가도 왜라는 질문이 건드려 화가 났다. 나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기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K와 사귀었던 시간으로 돌아가서 나를 떠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갈수록 점점 더 미로 속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K가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1년 중국 어학연수를 하고 다시 경영학과로 복학했고, 나는 군대와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와 중문과로 복학한 해였다. 중국 어학연수 경력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몇 개의 중문과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고, 중문과 사람들이랑도 친해서 술자리에서 많이 어울리게 되었다.


K는 키가 큰 편에 좀 마른 편이었는데 이에는 교정을 하고 있어서 말할 때는 항상 손을 입으로 가리는 버릇이 있었다. 교정 때문에 가리는 그 손짓이 내 눈에는 여성스러워 보였고, 가끔 그녀가 보이는 친절에 나도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 있었고, 집안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같이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애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하루는 친한 중문과 선배의 집들이가 있었다. K도 참석을 했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가야 해서 조금 늦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슈퍼마켓에서 집들이 선물도 샀다. 선배의 새로운 집인 오피스텔 건물을 찾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맞는 층에 내렸다. 복도식 구조였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 복도 가운데 집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났고, 복도의 맨 끝에서 K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이쪽 통로 앞까지 들려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가 늦게 와서 짜증이 난다는 것이었다. 짜증이 난다는 말이 이렇게 좋은 적은 없었다.


K가 의식하지 못하게 집들이 선물을 들고 발끝으로 걸어서 선배 집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음식을 장만하던 선배와 몇몇 후배들에게 손을 입에 가져다 되고 조용히 해달라고 했고, 약 5초간의 침묵 후에 늦은 주제에 별짓을 다한다고 등짝을 맞았다. 그렇게 K의 마음을 확인했고, 그날 저녁 집에 데려다주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랬던 K가, 나를 좋아했던 그녀가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한 현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나를 옥죄고 있었다. K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쿨한 척 이별 전화를 했지만, 지금 나는 완전히 미쳐있었다. 전화해서 내가 안 되는 이유를 따지고 싶었다가도 그냥 K가 어떻게 지내는지라도 알고 싶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K가 아니라, 소울메이트에게 걸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