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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를로스 안 Aug 10. 2022

2. 소울메이트

나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했다.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소울메이트 밖에 없었다.   


나와 소울메이트는  중국어 회화 학원에서 처음 만났고, 처음 만난 날부터 연애 상담을 했다. 왜 그렇게 된지는 알 수 없으나 집이 같은 방향이었고 처음 만났지만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될 거 같았다. 그녀를 소울메이트라고 하는 것은 처음 만날 때부터 말이 잘 통해서였다. 같은 책과 영화를 좋아했고, 한동안 못 만나다가도 한 번 만나면 커피숍에서 5시간을 이야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소울메이트는 두 살 위였지만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진짜 친구는 없다고 믿어 왔지만,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그 믿음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소울메이트가 내 곁에 살아 있는 증거였다. 소울메이트는 나의 동성 친구들과 레벨이 달랐다.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우먼 네이티브이자 생각과 느낌을 잘 전달하는 재주까지 가지고 있었다. 소울메이트는 여자의 세계에 관해 쉬운 언어와 친절한 태도로 설명과 위로까지 해주는 완벽한 안내자였다.


우리의 중국어 실력이 안녕에서 지난주에는 뭐하고 지냈어로 점점 레벨업 되어 갈 때쯤 소울메이트는 말했다.


“너는 연애만 하면 삶 전체가 질퍽거리는 거 같아”


연애가 나의 삶을 가로막고 있었다. 


매번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고,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되길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별의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들 앞에서 나는 변신을 했고, 변신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녀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논술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어느 날 아침에 주인공이 눈을 떴더니 바퀴벌레로 변신해 있었다. 바퀴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가족들은 혐오스럽게 바라본다. 나도 그렇게 사랑을 주었던 가족 같은 그녀들 앞에서 바퀴벌레로 변신을 했고, 변신한 나를 그녀들은 혐오하며 내 삶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카톡 이별 통지를 받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내. 몸의 대부분은 진흙탕 깊숙한 곳까지 빠져 있었다. 질퍽거리다 못해 완전히 빠져 들어가는 중이다. 나는 지난 이별의 레퍼토리를 다시 반복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제 옛 여자 친구가 되어 버린 K에게 전화를 해서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과 분노를 터트리며 다시 한번 변신을 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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