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도는 하루

백일백장 이른넷

by 민희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핑핑 도는 어지럼 발작이 시작됐다.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오래전에 메니에르 진단을 받은 터라 무리하지 않고 음식도 조심하며 지내야 하는 병이지만, 재발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여행 후에 귀 먹먹함이 지속되더니 결국 어지럼으로 이어졌다.

9시에야 병원 문이 열린다니 그때까지 버텨야 했다. 누우면 더 심해지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핑핑 돈다. 할 수 있는 건 소파에 기대앉아 오른쪽만 바라보는 자세뿐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검색을 하더니 8시 반부터 진료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가까스로 양치만 하고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예전에 와본 곳. 8시 28분에 도착했는데 벌써 세 명이 대기 중이었다. 괴로운 와중에도 진료를 기다리는 귀여운 아가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내 차례. 간단한 문진 뒤 청력검사를 했다. 일반적인 소리를 듣고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 단어를 듣고 말하는 검사까지 진행했다. 그리고 물안경 비슷한 것을 쓰고 하는 안진검사가 이어졌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더 심하게 돌아가 괴로웠다.

검사를 마친 의사가 “이건 메니에르가 아니라 이석증입니다.”하더니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귀 뒤쪽에 진동기를 대고 돌을 빼내는 치료가 시작됐다. 중간에 건전지가 필요하다며 간호사에게 "작은 건전지 달라고 하세요. 3개요" 간호사 나가려고 하자 "그냥 여기 문 열고 말하세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다시 "3개요"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전달이 제대로 안 됐는지 "3개라니까요. 알 텐데요"라는 의사말이 들린다. "비닐 벗겨서 주세요"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오간다.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의사의 말투에서 은근한 ‘빡침’이 느껴졌다.



치료가 끝나자 의사는 직접 시범까지 보이며 이석증을 위한

집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석증인 이유와 약 처방도 친절히 덧붙였다. 간호사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상냥했지만 아까 들은 의사의 말투 때문인지 어딘가 위축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병원을 나와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그런 눈치는 진짜 빠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어릴 적 엄마도 심부름은 늘 나한테만 시켰던 걸 거다. 그럴 때마다 “넌 비서하면 잘하겠다”라는 말도 하셨다. 그땐 비서가 남 심부름꾼인 줄 알고 발끈했지만.

결국 나는 눈치는 빠른데, 성질이 별로라 비서는 못 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약기운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숨 자고 나가서 점저를 먹고 오니 증상도 호전되고 기운이 조금 난다. 근데 날벌레 한 마리가 자꾸 날아다닌다. 부엌에 가보니 아침에 과일 먹은 접시며 컵 몇 개, 그리고 부스러기들이 싱크대 위에 지저분하게 있다. 조금 전에 와인을 한잔 마시던 남편의 흔적까지. 와인잔에 남은 달큼한 향이 날벌레에겐 얼마나 달콤했을까.

그런 눈치가 없는 남편덕에 무거운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다. 또 잔소리폭탄도 장착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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