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이른셋
며칠 전 집에 들어오자, 남편이 택배가 왔다며 건강식품 상자를 내민다. 내가 산 적 없는 흑도라지생강청. 남편은 내 취향일리는 없으나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주문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행히 송장 스티커와 박스는 얌전히 뜯어져 있었다. 확인해 보니 주소는 우리 집이 맞는데 받는 사람 이름은 전혀 다른 사람. 혹시 예전에 살던 사람일까 싶었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매우 귀찮았지만 남의 물건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다시 박스에 넣고 테이핑해 현관에 두었다. 토요일이라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두었는데 월요일에도 아침부터 병원과 친정을 들르느라 바빴고, 어제도 아침 일찍 성당에 가야 해서 박스를 못 본 척했다. 생각해 보니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줄곧 아침마다 분주했다. 오늘에서야 한가한 아침을 맞으며 오배송된 택배를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전혀 관심이 없다. ‘잘못 보낸 쪽에서 연락하겠지’ 하는 태도랄까. 모바일로 택배사에 접속해 반품 접수를 시도했지만 사진 크기가 크다고 오류가 나고 다시 줄여 올리니 이번엔 선택 항목에서 오류가 반복된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9시가 넘으면 전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0분이나 씨름하다 보니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짜증 내봤자 나만 손해지’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지만, 요즘 나는 예민모드다.
어제는 남편이 옷에 뭔가를 자꾸 묻혀서 잔소리를 했더니 본인이 직접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까지 했다. 그런데 고작 세 벌을 넣고 돌린 데다 얼룩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기름때 같은 얼룩이라 애벌 손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차라리 안 했으면 내가 했을 텐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저녁에 건조기를 열어보니 티셔츠 하나가 꼬깃꼬깃 뭉쳐 있고, 먼지 필터는 비우라고 말했건만 그대로였다. 다시 꾹 참고 티셔츠를 개어놓고 먼지 필터까지 세척했다. 남편이 해주는 게 많으니 이 정도는 내가 넘겨야지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또다시, 리코를 산책시키고 들어와서는 화장실에 하네스와 목줄을 던져놓았다. 결국 빨래 문제까지 한데 엮어 잔소리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살림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으면 남편을 보내고 싶다. 내 말은 도무지 듣질 않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문득 『도덕경』이 떠오른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오름은 내림이 된다.
여행에서 한껏 들떴던 마음이 식으니 일상은 다시 냉혹하다. 이 오르내림이야말로 삶의 진짜 리듬이겠지.
Welcome back home!
그래도 오늘은 커피도 빵도 모두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