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앞에 멈춰 서다

백일백장 아흔다섯

by 민희수

알면서도 가장 놀라운 건 세월의 흐름이다. 생각보다 훨씬 앞서 가 있다. 오늘 날짜를 정확히 맞추기도 쉽지 않다. 늘 한 박자 늦는다. 모든 걸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니 종이달력의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그래도 책상 위에는 놓여 있다. 우연히 눈에 띄어 한 장을 넘길 때만 달력을 만지는 셈이다.

그런데 두 자리 수가 되는 순간, 굳이 놀랄 일도 아닌데도 괜히 흠칫한다. 마치 결말이 뻔한 공포영화 속에서도 깜짝 놀라는 것처럼. “10 October.” 달력의 동그라미들이 나를 향해 ‘놀랐지?’ 하며 깜짝쇼를 벌이는 듯하다.

나는 어차피 집순이지만 연휴에는 사람들 속에 섞여 돌아다녀서인지 연휴의 마지막 날 기분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하필 오늘 달력을 봐버렸다. 아니, 봐줘야 했을까. 그것도 9일이라니. 그러니까 이제 2025년이 두 달 하고 스무날 남짓 남았다는 뜻이다.


가끔은 정말 미래를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쏜살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새 미래가 와있다. 어릴 적 상상하던 바로 그 세상 말이다. 새로 지은 건물들이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 속을 위잉― 소리를 내며 달리는 전기차로 지나갈 때면,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선 듯하다. 매끈한 터널을 통과하는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기가 바로 내가 그리던 미래도시가 아닐까?’ 초등학교 미술숙제로 그렸던 미래의 풍경 속에,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여덟 살짜리 막내딸에게 말했다. “너희가 크면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닐 거야.” 그땐 그게 마법처럼 들렸는데, 모든 질문에 척척 답해주던 엄마가 지금 이 미래에 안 계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신 챗GPT가 있으니 이제 엄살은 그만 부려야 할까.

미래가 이렇게 빨리 다가오다니. 이제는 나도 조금은 속도를 내야겠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투정만 부릴 게 아니라, 이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한다. 답은 세상이 알아서 들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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