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까지 죽음이란 것을 타인에게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 확실히 우리를 붙잡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붙잡는 그 날까지
우리는 죽음에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생각 같았다.
삶은 이쪽에 있고, 죽음은 저쪽에 있다."
무라카미하루키<반딧불이>
주말에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읽었다.
그때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죽음'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려 하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이 구절을 읽으면서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몇 년 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만 해도 무섭고 두려워서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죽음 자체가 겁나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을까 봐 두려웠다.
어릴 때 허비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고 지금이라도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마음은 더 위축되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결핍이 나를 다시 변화시켜 주리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명상을 하고 새로운 공부도 시작하고 잠시 쉬었던 일도 다시 시작하면서 지내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행히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아닌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공포'가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심리치료방법 중에 홍수법이라는 것이 있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한꺼번에 많이 노출시키면 역으로 공포가 사라지는 상담기법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도 반복해서 쓰고 있자니 별거 아닌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죽겠다'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좋아죽겠다, 미워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맛있어죽겠다, 보고싶어죽겠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내공은 아직 못 쌓았으나
'죽음'이라는 것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의미 있는 삶과 죽음을 위해 글을 쓰고자 한다. 그 의미가 대단할 필요는 없다.
나를 알아차리고 타인을 알아주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처럼 어느 자리에나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비좁은 세상을 벗어나서 어깨에 힘을 빼고 느린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