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과정은 구도의 길이다.
<싯다르타>가 소설이라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동양의 사상을 헤르만 헤세가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최근에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터라 더 관심이 갔다. 헤세의 글을 읽으면 그와 함께 강물을 바라보고 노를 젓고 헤엄치는 것처럼 빠져든다. 그 강물이 나의 말라버린 사고에 촉촉하고 반짝이는 물을 뿌려주는 기분이다.
싯다르타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었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에게는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하였다. 그는 집을 떠나 사문들과 함께 구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자아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 자발적인 고통을 느끼고 수천 번 자아에서 벗어나는 길을 떠났다. 그러나 결국 다시 자아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술주정뱅이가 정신이 마비상태가 되었다가 술에서 깨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은 얻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는 생각에 싯다르타는 고타마를 따라 구도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결국 그 무리에서도 그는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낀다. 결국 고타마를 떠나 혼자가 되어 카말라를 만나고 돈을 벌기 위해 떠난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사색, 기다림, 금식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돈을 벌고 쾌락을 배운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의식도 못한 채 보통 사람처럼 되고자,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처럼 되고자 애를 썼고 그들의 삶을 동경했으나, 그의 삶은 그들의 삶보다 훨씬 비참하고 빈약해졌다."
P102
모든 것을 버리고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강에 도착하여 뱃사공 바수데바와 생활하면서 강물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며 매 순간 같은 강물이면서도 새로운 강물이라는 것이다!"
p121
강물에서 싯다르타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번뇌, 괴로움과 두려움은 시간에서 오는 것이며, 시간의 개념을 벗어날 수 있다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에서 <좀머씨 이야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항상 압박감과 조바심,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고, 무슨 일이든지 항상 끝마쳐야 할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만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현재를 살라’고 강조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잘못과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서 현재를 즐기라고 해석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나는 원치 않은 순간에 떠오르는 과거의 사건과 달라져야 할 것 같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박처럼 다가왔다.
싯다르타가 강물에서 자신의 얼굴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인간이 정해놓은 ‘단어’ 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도 나의 찬란한 미래도 그 강물 안에서 함께 헤엄치면서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집착처럼 들리던 ‘현재’라는 것이 소멸되는 듯했다.
지혜는 행동할 수는 있지만 전달할 수 없으며, 모든 일면적인 진리는 전체성,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었다.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p164
우리는 어떤 말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전달을 받아도 내가 수용하는 말 만을 듣고 판단한다. 그 안에 어떤 진리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상관이 없는 듯 멋대로 생각한다.
“친구여, 주의 깊게 들어봐!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고 할 수 있네… 지금은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열반에 이를 테고, 부처가 될 테지... 이 ‘언젠가’라는 말은 착각이고, 단지 비유에 불과한 거야!... 그 죄인이라는 사람은 부처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거나, 어떤 발전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죄인의 내면에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깃들어 있다네. 그의 미래가 이미 그 사람 속에 깃들어 있지.
그러므로 자네는 그 사람의 내면에서, 자네의 내면에서, 모든 중생의 내면에서 형성되고 있는 부처, 가능의 현태로 존재하는 부처, 숨어 있는 부처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하네...
이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하며, 모든 죄는 이미 그 속에 은총을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는 이미 그들 안에 노인을 품고 있고,
모든 젖먹이는 이미 그들 안에 죽음을 품고 있고,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 안에 영원한 생명을 품고 있다네.
누구도 다른 이가 자신의 행로에서 얼마나 나아갔는가를 알 수 없어.”
P165-P166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우리가 딱하게 여기는 어떤 이에게 함부로 조언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내가 현재 사는 모습이 그 사람보다 잘나 보이고. 내가 하는 생각이 그 사람보다 우월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 그 사람은 현재, 지금 이 시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서 보는 모습이 나태인지, 휴식인지 모른다.
‘현재’는 시간일 뿐이고 나는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지를 찾고 나면 또 다른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있을 뿐이다. 그 여행길이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나만의 독자적인 길을 찾아감으로써 어떤 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누구라도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법을 행할 수 있고 자신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법입니다.”
P79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강물이 서둘러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물결은 고통스러워하며 제각기 여러 목표를 향해, 폭포를 향해, 호수를 향해, 여울을 향해, 바다를 향해 급히 흘러갔고 모두가 나름대로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며 새로운 목적지가 나타났다…
여전히 고통에 차 있고 무언가를 찾는 듯한 울림이었지만 다른 소리들, 환희의 소리와 고통의
소리, 선한 소리와 악한 소리, 웃는 소리와 슬퍼하는 소리, 백 가지, 천 가지 소리가 섞여 들어 있었다."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