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상영관

백일백장 일곱째 날

by 민희수

재미있게 보던 여행프로그램인 지구마불과 태계일주를 완주하고 볼 만한 게 없나 찾던 중이었다. 즐겨보는 유튜브채널에서 주말에 볼만한 영화로 스웨덴영화 <렛미인>을 추천해 줬다. 제목은 너무나 익숙하고 꽤 좋은 평을 받은 영화라고는 알고 있었다. 10여 년 전에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렛미인>이라는 티브이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외모로 인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참가자들을 선정해서 성형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취지의 기획이었다. 제목이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렛미인이라는 영화도 뭔가 변신하는 그런 영화인가 생각했었다. 제목만 가져다 썼을 줄이야...

아무튼 렛미인이라는 영화가 궁금해져서 구독 중인 OTT 중에 있는지 찾아보니 다행히 있다. 빔프로젝트로 보면 영화관 비스무리한 느낌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깜깜할 때 봐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아랫층방에 뒀을 때는 창문이 작아서 낮에도 대충 볼 수 있었는데 거실에 옮겨놓으니 어둡기 전에는 보기가 어렵다. 아주 두꺼운 암막커튼이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까지야... 이미 9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바로 볼 수 있었다.

2008년 개봉작이라는데 첫 느낌이 최신작 못지않게 새롭다. 지금 나는 폭염 속에 있는데-물론 에어컨 아래 있지만- 눈 내리는 스웨덴 마을 배경의 영화를 보는 기분도 괜찮다. 장르가 공포, 로맨스, 드라마, 성장이라고 적혀있다. 유튜브에서 뱀파이어 이야기라고 대충 들은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뱀파이어물의 클리셰를 전혀 따르지 않은 것이 너무 신선하다. 영화 내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미장센이 매우 훌륭했다. 서늘한 느낌의 눈 덮인 거리이며 집안의 분위기, 인물들의 의상과 그 뒤의 배경들 그리고 카메라의 각도 등 모두 몰입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2시간 가까이 극장에서 보는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감상했다. 항상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영화나 공연, 전시 등을 접할 때면 그들의 창의성과 표현력에 놀라곤 한다.

나도 전에 디자인을 업으로 했었지만 이미 너무나 멋진 것들이 다 나와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하며 적성에 대한 갈등 끝에 진로를 바꿨던 것 같다. 천재라고 하는 예술인들은 계속 등장하고 그들의 작품에 감탄하면서 그들의 재능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들의 멋진 작품을 즐길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다. 이번 생은 이렇게 즐기기만 해도 성공이니까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아직 접하지 못한 작품들과 새롭게 나올 작품들까지 너무 기대된다. 오늘도 숨겨진 명작을 나만의 상영관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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