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여덟째 날
나는 미용실에 자주 가지는 않는다. 염색은 순한 염색약으로 집에서 가끔 하고, 파마는 거의 하지 않는다. 작년에 몇 년 만에 파마를 했다가 머리가 너무 상해서, 다시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상한 머리를 단발로 잘라냈더니 세상 시원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단발머리를 잘 관리했지만, 머리가 자라면서 점점 지저분해 보여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가끔 가는 편이라 단골 미용실은 없다. 그냥 그때그때 저렴한 곳을 검색해 예약하고 방문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찾은 미용실에 도착하니, 사진보다 훨씬 앳된 디자이너가 상냥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샴푸를 하고 자리에 앉아 간단히 원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하니 커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머리 스타일에 대한 얘기만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가 몇 마디 대꾸를 하자, 디자이너가 갑자기 "손님은 굉장히 우아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화가 나셔도 조용히 말하실 것 같아요"라고 칭찬하며 재잘거린다. 남자친구 이야기부터 친구의 연애사,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 술술 풀어놓는다. 나이를 물으니 24살이란다. 귀여운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내가 하는 얘기에도 따뜻하게 맞장구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직업상 응대일 수 있겠지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태도 덕분에 나 역시 마음이 놓였다.
어릴 땐 내향적인 성향 탓에 미용실에서 디자이너와 이야기 나누는 게 어색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면이 한결 편해진 것 같다. 상대가 말을 하면 그에 맞춰 이야기하고, 하지 않으면 또 그 나름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도 불편하지 않다. 예전보다 한층 여유로워진 나를 발견한다.
젊은 친구들과 대화할 기회가 줄어든 요즘, 언론에서는 자꾸 세대 간의 차이를 떠들어대는데 이렇게라도 세대가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