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후, 마음이 흔들린 이유

백일백장 열째 날

by 민희수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북촌에 약속이 있어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수 있긴 하지만, 우산까지 들고 걷기엔 좀 번거롭다. 마침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잠깐 데려다줄 수 있다기에 덕분에 편하게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가회동성당에 들러 조용히 미사를 드렸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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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서니 길 건너편에서 키 큰 청년이 우리 쪽으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화장품 매장인데 그냥 구경만 해도 사은품을 준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일러서 시간이나 때울 겸 따라나섰다.


내가 평소에 애용하던 브랜드라 별 경계심 없이 슬쩍 발을 들였다. 그런데 이 직원, 설명을 어쩜 그렇게 침착하고 설득력 있게 잘하는지… 그냥 구경만 하려던 마음이 슬금슬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가격을 검색해 보니 온라인보다도 싸다. '어차피 쓸 거, 싸게 줄 때 사두자'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옆에 같이 간 언니도 이미 속으로 구매 품목을 정한 눈치였다. 결국 우리 둘 다 계획에 없던 화장품 쇼핑을 마치고 매장을 나서며 동시에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장사를 잘해? 안 살 수가 없잖아~"

둘이 깔깔 웃으며 비 오는 북촌 골목을 다시 걸었다.

탱탱한 피부를 꿈꾸며, 오늘은 이만 총총.


minisu 아트선재에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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