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엔 골드키위

백일백장 열일곱째 날

by 민희수

나는 위가 약한 편이라 커피나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진다. 빵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래서 자제할 수밖에 없다. 역류성 식도염 증상도 자주 느껴 늘 내시경 검사도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받는데 의사 말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실제보다 증상을 더 크게 느끼는 모양이다.

예전에 키위를 먹고 속이 쓰려서 고생한 적이 있어 그 후로는 아예 키위는 입에도 대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몇 달 전, 남편이 골드키위를 사줘야 할 일이 있어 아주 상태 좋은 점보 사이즈 골드키위가 집에 들어왔다. 녹색 키위보다는 낫겠지 싶어 조심스럽게 한입 맛만 봤는데, 세상에… 너무 달고 맛있었다. 걱정했던 속 쓰림도 전혀 없고, 오히려 저녁 식사 후에 소화가 훨씬 잘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식후에 골드키위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위가 정말 편안해졌다. 덕분에 조심스레 디카페인만 마시던 커피도 이제는 좋은 원두로 아침 한 잔 정도는 즐길 수 있게 됐다. 물론 잠을 잘 자기 위해 오후에는 삼간다.

돌이켜 보면 10년 넘게 위 때문에 고생하면서 영양제, 양배추즙, 마즙, 노루궁둥이버섯까지 안 먹어본 게 없었다. 너무 힘들 때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도 가입해 정보를 나누곤 했는데 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바로 그 음식이 골드키위였던 것 같다.
몸에 맞는 음식을 찾은 것이 이렇게나 큰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음식뿐만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일, 사람, 생활 방식도 그렇다. 무조건 좋은 것, 남들이 추천하는 것보다는 내 삶의 리듬과 감정에 잘 어울리는 것들이 결국 나를 지켜준다.

나는 물질보다는 경험에 소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뭔가를 배우고, 여행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맛있는 걸 먹는 데엔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아주아주 가끔 멋진 명품 가방을 사고 싶다가도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없어도 그만이지' 하고 돌아서버린다. 하지만 특가 항공권이 뜨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결제해 버린다.

나에게 중요한 건 결국 느낌이다. 손에 쥐는 것보다 가슴에 남는 것이 더 오래 나를 행복하게 한다. 눈으로 본 풍경, 마음으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에서 느껴지는 기쁨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나는 경험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다.

오늘도 조금씩 내 삶에 맞는 것들을 골드키위처럼 발견해 가며, 나답게 살아가는 중입니다.


minisu20250708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치유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