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

백일백장 스물둘

by 민희수

수잔 케인의 책 『콰이어트』를 읽는 중에 264페이지에는 스스로가 보상지향형인지 위협지향형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자가 진단 기준이 나온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흥분되고 에너지가 넘치며, 좋아하는 것을 얻을 기회에 쉽게 들뜨고, 친구들보다 겁이 덜 나는 편이라면 보상지향적인 성향이다. 반대로 비판이나 꾸중에 민감하고, 누군가 내게 화가 난 것 같다고 느끼면 신경이 쓰이고, 실수나 중요한 일을 망칠까 걱정이 많다면 위협지향형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항목이 다 해당되진 않겠지만, 대체로 나는 위협지향적인 편에 가깝다. 작은 비난에도 겉으로는 쿨한 척하지만 속으로 꽤나 신경이 쓰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감정에 예민하며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늘 걱정이 앞선다. ‘신경증’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좋게 보면 책임감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오히려 더 큰 일을 주저하게 되는 면도 있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플로(flow)’ 개념이 등장한다. 어떤 활동의 결과로 얻는 보상이 아니라 활동 자체에 몰입해 즐기는 상태. 보상도 처벌도 의식하지 않고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운 상태. 그런 자율을 누리려면 스스로 보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 순간에 집중하며 몰입하는 것—누구나 꿈꾸는 자유가 아닐까.


이 대목을 읽으며 최근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F1 더 무비>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소니(브래드 피트)가 결승선을 앞두고 완전히 몰입해 고요한 상태에 빠지는 순간. 마치 명상할 때처럼 알파파가 나오는 듯한 집중의 경지. 모든 것과 내가 하나가 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상태. 그게 바로 플로의 순간일 것이다.


그런 대단한 사건은 아니어도 비슷한 순간이라도 나도 경험한 적이 있었을까? 문득 떠오른 건, 얼마 전 보통 책을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이틀 만에 단숨에 읽어낸 일이다. 무려 2권짜린데.. 스마트폰도 제쳐두고 완전히 빠져들었던 그 시간은 돌아보면 짧지만 강렬한 플로 상태였던 것 같다.

또 하나는 30대 중후반,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고 혼자 공부하던 시기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점수도 매기지 않았지만 스스로 철학 강의를 찾아 듣고, 관심 가는 강연을 찾아다녔던 그때, 낯설고도 짜릿한 지적 자극 속에서 나는 완전히 몰입했고 그 시간이 내 삶을 조금씩 바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 삶에 의미 있는 변곡점이었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의 보상이나 타인의 인정보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줄 수 있는 활동.

그게 곧 나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 자유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minisu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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