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는 너무 어려워...

백일백장 스물여덟

by 민희수

얼마 전, 남편이 마일리지가 쌓이는 카드를 다시 신청했다. 예전에도 썼었는데 연회비도 비싸고 요즘은 저가항공도 잘 되어 있어서 굳이 마일리지를 모을 필요가 있나 싶어 바꿨던 카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회비만큼 캐시백이 된다는 말에 솔깃해졌단다. 그리고 연회비에 준하는 호텔식사권이 나오니 1년에 한 번, 이벤트성으로는 괜찮지 않나 싶었다.

사실 호텔뷔페는 너무 비싼 데다 많이 먹게 되니까 몇 년 전부터 피하고 있었는데 가끔은 또 그 휘황찬란한 음식들의 향연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포시즌스 호텔에 가보기로 했다. 킹크랩이 잘 나온다는 평에 정한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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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마자 뭐부터 먹을까 고민도 없이 접시를 들고 출동했다. 5성급 호텔이라 해도 직접 가져다 먹는 뷔페의 캐주얼한 분위기는 마음이 편안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글까지 써놓고선 음식 앞에서는 나 자신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언제 또 먹겠냐 싶은 킹크랩은 한 번 먹으니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었고, 스테이크도 딱 한 덩이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생각날 것 같은 랍스터만 억지로 두 번 가져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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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과 디저트를 조금 맛을 본 후 도저히 더는 들어갈 공간이 없었지만 소화제로 골드키위까지 챙겨 먹고서야 마무리했다. 요즘 소식을 하다 보니 남편도 예전만큼 실력발휘를 못하고 먼저 나가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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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보이는 풍경, 모두가 먹는 데만 집중하는 그 모습,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았다. 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돼지로 변한 주인공 부모님 모습이 딱 떠오른 거다. (물론, 나 자신을 돌아본 것이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시길…)

들어올 땐 우아하게 앉아 ‘맛만 좀 보겠다’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본능에 충실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은 위장이 불편하도록 많이도 먹었다. 과식과의 전쟁에선 늘 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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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북한 배를 부여잡고 소화시킬 겸 광화문 교보문고로 이동했다. 광화문 광장은 어느새 물놀이장이 되어 있었고, 더운 날씨 탓에 교보문고 안도 인파로 북적였다.

요즘 너무 집순이 모드였으니 이렇게 사람구경도 좀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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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탐욕으로 입은 즐거웠지만 위장은 아직도 삐졌는지 움직임이 둔하다

음식도 결국 '적당히'가 제일 맛있다는 사실.

내일은 오트밀죽이나 끓여 먹으면서 속을 달래줘야겠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채우면 비워야 하느니... 도덕경 책을 어디에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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