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고요 속에 머물다

백일백장 마흔아홉

by 민희수

오늘은 11시 교중미사에서 독서를 맡은 날이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가족모임에 가야 해서 남편이 성당에 데려다주고 마칠 때 다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일찍 도착해 남편을 보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가운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가방을 열어보는데 휴대폰이 없다.

요즘은 헌금도 스마트폰 앱으로 내기에 지갑을 안 들고 다닐 때가 많다. 다행히 오늘은 지갑이 있었고 안에 비상금으로 넣어둔 만 원짜리 한 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휴대폰이 꼭 필요한 건 아니겠다 싶었지만 미사 후 작은 행사가 있어 조금 늦는다는 걸 남편에게 알려야 했다. 입구로 나가 아는 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내 휴대폰은 차 안 충전기에 잘 꽂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독서 봉사를 할 때는 휴대폰을 무음이나 비행기 모드로 해두니 없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휴대폰이 있으면 괜히 화면을 열어보고 확인할 필요도 없는 걸 여러 번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휴대폰이 없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불안했지만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히려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었고 덕분에 독서도 떨림 없이 잘 마쳤다. 이어진 신부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유난히 귀에 잘 들어왔고 꼭 내 마음을 아시는 듯한 강론 내용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 짧은 한 시간이 내게 많은 걸 알려주었다. 휴대폰이 옆에 있으면, 심지어 보지 않고 가방 속에 넣어둬도 나는 계속 그것을 의식하며 거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단순히 전원을 끄는 것과는 다르다. 물리적인 거리도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한 시간 후면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은 휴대폰에 잠식되었던 뇌의 일부가 조금씩 복구되어 맑아진 듯했다. 오늘의 우연이 결코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는 명상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며칠 동안 그 굴레에서 벗어나 살아보면 어떤 기분일까.

오늘의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와서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휴대폰을 멀리해보려 한다. 그것이 내 삶에 큰 힘을 줄 것 같다.


minisu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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