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흰머리가 가르쳐준 것

백일백장 쉰일곱

by 민희수

흰머리가 또 올라온다. 본격적으로 염색을 시작한 건 재작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할까 말까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만 숨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앞머리에도 한 올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많이 나면 정기적으로 관리할 텐데 문제는 그 애매함이다. 한두 가닥이 꼭 곱슬거리며 삐죽삐죽 올라오니 눈에 너무 거슬린다. 염색약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니 최대한 버티다가 도저히 못 봐주겠다 싶을 때 염색을 한다. 따로 기록해두지 않으니 주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는 점점 더 짧아질 뿐이라는 건 분명하다.

미용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순한 염색약을 사서 혼자 하거나 남편에게 부탁한다. 어제도 윗부분만 뿌리염색을 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잊어버렸다. ‘한두 가닥 누가 보겠어?’ 하면서도 막상 하고 나면 확 달라진다.

언니들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몇 주 전에 만났을 때는 희끗희끗하더니 얼마 전 아빠 생신날에는 두 사람 모두 깔끔해져 있었다. 굳이 살피지 않아도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람의 외모에 유심히 살피지 않는 편인데도 머리의 변화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만큼 머리가 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일 거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이 듦을 뜻하는 파뿌리라는 표현이 정말 내 곱슬 흰머리와 똑 닮아있다. 나는 그 세월을 인정하기보다는 아직도 조금이라도 젊음을 붙잡고 싶다. 그런데 ‘젊음’이라는 단어를 따로 떼어 쓰는 걸 보면 내 안에서는 이미 그것이 멀리 떠나버린 것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에 대해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진다.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니까.


이제 50km 도로에 막 진입했으니 속도를 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둔해졌다고 미적거릴 것이 아니라 '나중에'라고 미뤄둔 일들을 지금 해야 한다. 내 사전에서 ‘나중에’라는 말을 삭제해야 한다.

나를 움직이게 했던 말, “다만 할 뿐”

이제는 거기에 한 단어를 더 붙이고 싶다.

“다만 지금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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