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체취가 묻어나는 글
딸아이는 여섯 살이다. 아직은 혼자서 잠을 자지 못한다. 자러 가자고 말하면 엄마, 아빠를 데리고 안방으로 간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엄마 또는 아빠 곁에 누운 뒤 잠을 청한다.
아내와 나는 눈은 감았지만 딸이 꿈나라에 빠질 때까지 자지 않고 버틴다. 딸을 재우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다. 딸이 얼마나 일찍 잠드느냐에 따라 재우고 나오기에 성공할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같이 잠들 때도 있다.
딸이 곤히 잠들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몰래 방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YES!!" 오늘은 성공이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딸과 함께 잠이 든 모양이다. 괜스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야호, 자유 시간이다.’
뭐 할까 고민하다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실행했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놀리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났다. ‘이만하면 됐다.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수정하자.’라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껐다. 다시 도둑처럼 안방 문을 살짝 열고 까치발로 잠입했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와 딸의 냄새가 났다. 샴푸와 로션 향기에 아내와 딸 고유의 체취가 더해져 산뜻한 향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 냄새였다.
학창 시절 본가 안방에 가면 어머니의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없을 때도 안방에서는 어머니 냄새가 났다. 내 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홀아비 냄새는 40대부터 난다는데, 안 씻어서 그랬던 걸까.
얼굴, 목소리처럼 사람마다 고유의 향이 있다. 자주 보는 사람, 친한 사람은 냄새만 맡아도 누군지 안다. 나는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안다. 이 사람에게 어떤 향이 나는지.
글도 같다. 글에는 그 사람의 향이 묻어난다. 따뜻한 향, 포근한 향, 재미있는 향이 나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악취가 나는 글도 있다. 무분별한 비방, 남을 배려하지 않는 악플에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나는 꽃처럼 농농한 향이 풍기는 글을 좋아한다. 블로그, 브런치에서는 다양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한 마리 벌처럼 온종일 이곳저곳 쏘다니며 냄새를 채집한다. 이 냄새도 맡고 저 냄새도 맡는다. 좋은 냄새를 킁 하고 맡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진다.
유시민 작가는 《표현의 기술》에서 말했다.
“글에는 쓴 사람의 내면이 묻어납니다. 글을 보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감정이 그 사람을 이끄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글은 사람을 보여 줍니다.”
문득 글쓰기를 멈춘다.
'내 글에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는 내 냄새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 내 글에서 나는 냄새는 읽는 이가 감별한다.
글을 쓸 때 가끔 유명 작가로 빙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오늘 ○○○이다. 오늘은 위대한 작가처럼 글을 써보리.’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최대한 의식하며 글을 쓴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한다. 글쓰기에 몰입하면 결국 내 방식대로 글을 쓰고 있다.
아쉽게도 유명 작가와 하나가 되지는 못하지만 한 편의 글을 쓴 것에 가볍게 웃고 만족한다. 설령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글을 쓴다고 한들, 그 글에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향기가 날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친숙한 향이 나서 고개를 휙 돌렸는데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고수의 글쓰기를 배우되 내 것으로 체화시켜야 내 냄새가 나는 글을 쓸 수 있을 테다.
가수 장범준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라고 설레는 마음을 노랫말에 담았다. 그의 표현을 빌려 ‘수많은 글들 속에서 내 향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다. 누가 읽어도 ‘아 이 사람이 쓴 글이구나.’라고 느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내 글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고유의 향기를 평생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