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과자는 치토스만 먹었다. 치토스에 포함된 종이 딱지 '따조'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두 봉지씩 사 먹으며 따조를 모았다. 이미 갖고 있는 따조가 나오면 친구의 따조와 바꾸었다. 하나하나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따조를 수집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게 삶의 낙이었다.
살면서 한 가지에 꽂혀서 깊이 파고 들어간 것들이 많다.
게임에 빠졌을 때는 날마다 오락실, PC방에 갔고
일본판 꽃보다 남자 시즌 1의 마지막 장면은 50번 넘게 돌려봤다.
항상 자드의 노래를 듣고 뜻도 모르는 가사를 달달 외웠다.
딱지, 게임, 드라마, 노래
그때그때 대상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다. 아무도 내게 그것에 빠지라고 시키지 않았다.
만약 누가 나더러 게임하라고 보챘으면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했기에 스스로 빠져들었고 알면 알수록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지금은 글쓰기에 빠져있다. 글쓰기 책을 몰아서 읽고 글쓰기를 주제 삼아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며 기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푼다.
나는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글쓰기는 내 전공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모두 게임이 주제였다. 게임을 좋아하고 프로게이머로 활동했기에 쓸 수 있는 책들이었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했기에 출간할 수 있었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글쓰기 책을 읽으며 여실히 깨닫는다. 그럼에도 언젠가 글쓰기 책을 출간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글쓰기 달인의 글을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 언젠가 이루어질 거라 기대한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좋아하면 즐길 수 있고 즐기면 정점까지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은유 작가는 《쓰기의 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무엇으로 말할까. 작가는 더 찬 사람이었으므로 난 아니었다. 강사는 더 센 사람이었으므로 난 아니었다. 고심 끝에 '글 쓰는 사람'으로 정했다."
탐나는 정의였다. 나도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하루 이틀 사이로 글을 쓰고, 고치고, 발행하며 글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 블로그, 브런치, 책, 기고 가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글쓰기에 관한 책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며 공상에 잠긴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으면.
친구들에게 뽐냈던 수많은 따조처럼, 쌓인 글을 내세울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그렇게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