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 국가대표 우상혁 선수 경기를 관심있게 시청했습니다. 시종일관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메달을 따지 못해도 환히 웃는 우상혁 선수의 표정이 멋졌습니다. 차세대 스포츠 스타가 탄생했습니다.
우상혁 선수가 출발선에서 발을 디디고 전력 질주할 때마다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는 2m 35cm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신기록을 달성했고 4위에 올랐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태극기를 두르고 트랙을 활보하는 우상혁 선수의 미소가 아름다웠습니다. 오랜만에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응원했습니다.
우상혁 선수가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우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부럽진 않았습니다. 제가 높이뛰기를 할 일도 없거니와 설령 높이뛰기를 연습한들 올림픽에 나갈 수 없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높이뛰기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고, 높이뛰기에 아무런 열망이 없습니다. 그저 우상혁 선수가 2cm만 더 높이 뛰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재작년 과장 승진 심사에서 누락했습니다. 맞은 편에 앉은 동기가 승진하는 걸 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었습니다. 동기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지만 진심을 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나도 누락했다. 1년 금방 간다."는 선배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도 4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나는 승진하지 못했을까' 허전한 마음에 3개월 동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동기가 부러웠습니다.
절대적인 업적만 놓고 보면 우상혁 선수가 세운 대한민국 신기록과 과장 승진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상혁 선수에게 일말의 부러움도 느끼지 않았지만 승진한 동기의 뒷모습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우상혁 선수의 업적은 제가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과장 승진은 손을 뻗으면 거머쥘 수 있는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부럽다 (형용사) :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부럽다"라는 형용사에서는 수동적인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가만히 서서 동경하는 대상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림이 연상됩니다. 적극적으로, 기쁘게 부러워한다고 하면 뭔가 이상합니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정의처럼 부러움은 이루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것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건 마음 먹으면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작가가 부럽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부러워하게 된 건 제게 큰 변화입니다. 책을 쓰기 전만 해도 작가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가 인세로 얼마를 벌든, 저자 강연회를 하든 아무 감흥이 없었습니다. 딴 나라 이야기였으니까요. 작가의 책을 소비하고 작가의 입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출간 작가가 부러워졌고,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부럽습니다. 내 노력이 담긴 책을 누군가가 읽어주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이토록 감사한 행복을 자주 누리는 작가가 부럽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을 싶습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출발선 앞에 섭니다.
누군가를 부러워할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부러워해야 이루려고 발버둥 칠 테니까요. 부러움을 발판으로 얼마나 높이 뛸 수 있느냐는 내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니요.
부러우면 이기는 겁니다.
부러워해야 쟁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부러워하고 있나요?
어떤 게 떠오르나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