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고 글감 목록을 훑어본다.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쓸까...'
"그래. 오늘은 이거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엄지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린다. 생각나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쓴다. 1,000자 정도 채운 뒤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어본다.
큰일이다. 글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모르겠다. 횡설수설, 갈팡질팡하는 취객이 나였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기본이고 앞 문단에서 A라고 주장했다가 다음 문단에서 A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나 보다. 다양한 자아가 손끝으로 고개를 내민다.
글을 바로잡아야 한다. 논지에 어긋나는 부분을 제거하고 A와 반대되는 문장을 지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어색한 곳도 고친다. 휴, 이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글이 됐다. 읽기도 한결 편해진다.
초고는 감성으로 쓴다. 빠른 속도로 원하는 분량을 채우는 데 치중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른 채로 글을 쓸 때도 있다. 손 가는 대로 마구잡이로 쓴다. 출간 작가라는 게 무색할 만큼 엉터리로 쓴다. 글이 채워지는 걸 보면서 히죽거린다.
퇴고는 이성으로 한다. 콧구멍으로 날숨을 길게 뱉고 시작한다. 0.5배속으로 글을 읽는다. 문장이 길어지면 입으로도 읽어본다. 글의 흐름이 어색한 부분에서 시선을 멈춘다.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읽는 이와 글쓴이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초고를 쓰면서 글이 술에 취했다면 퇴고를 하면서 글은 술을 깬다. 퇴고할 때는 머리도 지끈거리는 듯하다. 관자놀이에 검지와 중지를 채 글을 고친다. 퇴고를 마치면 언제 술에 취했냐는 듯 글이 똑바로 걷는다. 기분도 상쾌해진다.
술을 자주 마시면 주량이 는다. 글도 자주 쓰면 필력이 는다. 초고를 쓰고 퇴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브런치가 한바탕 글상을 차려주었다. 글쓰기에 취하고 글쓰기에 중독됐다. 치료받고 싶지 않은 중독.
다른 주제의 글을 쓰다가 생각처럼 써지지 않아 한탄하며 쓴 게 재미있는 글이 됐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역시 글을 써야(?) 하나 보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니 비가 그친 직후에 공원을 걷는 것 같다. 글맛이 좋고 기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