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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2. 2021

뒷담화

우리 사회의 보다 건강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흡연실은 뿌연 연기가 자욱하다. 와이셔츠 차림의 사원 몇 명이 둘러서서 각자 담배를 한 모금씩 빨고 내뱉는다. 한 사람이 슬며시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이야기 들었어? 김 부장 있잖아……” 주위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귀를 모은다. 이야기 도중 다른 사람들은 맞장구를 친다. “그게, 그랬구나.”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김 부장이 문을 쓱 열고 들어온다. 이야기는 중단되고 한 명 두 명 자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간다. 김 부장 혼자 남아 담배를 피우며 생각한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언니, 이 대리와 미스 정 소문이 사실이야?” “아직 모르고 있었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 탕비실 테이블에서 점심 후 커피를 마시는 여직원들의 화제는 사내연애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미스 정은 이 대리와 외근을 함께 나갔다. “그러게. 너무 티 나게 그러는 거 아냐? 오늘만 해도……” 자리로 돌아가던 김 부장이 탕비실 유리창을 두드린다. “어머,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됐네. 시간이 금세 가네. 다들 일하러 가자.”  

   


회사나 많은 조직에서 삼삼오오 모여 없는 사람을 험담하는 ‘뒷담화가’ 성행한다. 뇌과학자 정재승은 『열두 발자국』에서 “우리가 만나서 하는 대화의 65퍼센트가 뒷담화입니다. 뒷담화란 반드시 욕이 아니더라도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말한다.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힘 있는 상사나 갑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해서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속된 말로 ‘씹는다.’ 귀가 솔깃해, 불만을 토로하려 뒷담화에 끼어들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헤어질 때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는다. 뒷담화가 마음 편한 얘기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뒷담화를 하는 것일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어김없이 존재하는 뒷담화가 소규모의 사람들 사이에 정보 소통과 협력 관계를 이어주는 순기능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 당위성을 감안하더라도 난무하는 뒷담화는  우리 사회가 권위적이고 소통의 통로가 막혀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할 말 다하고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해야 할 말도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배출구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보다 원활해지려면 뒷담화 대신 당사자 앞에서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대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문화가 정착⋅확산되면 소모적인 험담이 줄고 생산적인 의견 교환이 늘어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당장에 변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계속 씹고만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 방향이 옳다면 과감히 도전할 용기를 내어 볼 일이다. 그리고 뒷담화하는 입심으로 책에 대해 토론하고 사회문제와 미래의 대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장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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