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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목숨 건 사람들

by 메티콘

여기 커피가 삶의 모든 것인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는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농장의 주인이고, 한 남자는 전문적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이다. 그리고 다른 여자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중독자이다. 커피 농장 주인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카렌 블릭센이고, 바리스타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민준이다. 마지막으로 커피 중독자는 〈커피 칸타타〉의 리스헨이다.

지금부터 커피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카렌 블릭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카렌 블릭센의 17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스물아홉 살인 1914년에 덴마크에서 케냐로 이주해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다 마흔여섯 살인 1931년 덴마크로 돌아간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서 경험한 이야기, 데니스 핀치헤턴을 비롯한 이주민들과의 우정, 사파리와 전시 물자를 조달하며 겪은 모험담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커피 농장주인 그녀는 커피 농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커피 묘목에 생두까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커피 농사의 난관들과 농장 경영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스물아홉 살의 그녀는 기대를 잔뜩 품고 커피 묘목을 농장으로 들여왔다. 묘상에서 묘목이 잘 자라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기다리던 비가 오자 모든 농장 일꾼을 동원하여 밭고랑을 따라 줄지어 묘목을 심었다. 황소가 경작기를 끌고 밭고랑을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며 김을 매줬다. 그렇게 사오 년 자란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우기에 들어서면 커피나무에 하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다. 붉게 영근 커피 열매를 따기 위해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나섰다. 수확한 열매는 말과 소가 끄는 수레로 농장에 속한 공장으로 옮겼다. 모인 열매를 덜거덕거리며 돌아가는 대형 건조기에 넣고 말렸다. 건조한 열매의 껍질을 벗겨 생두를 얻었다. 생두를 선별하여 마대 자루에 83킬로그램씩 담고 입구를 꿰매면 농장에서의 일은 끝이었다.

생두 자루는 동트기 전에 우마차마다 열두 자루씩 실었다. 우마차 하나에 황소 열여섯 마리가 붙었다. 농장에서 나이로비 기차역으로 우마차가 열을 지어 출발했다. 생두는 나이로비에서 기차에 실려 몸바사 항구로 운송되어 선적되었다. 런던에 도착한 생두는 경매를 통해 고객들에게 팔렸다.

그녀는 커피 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기대와는 다르게 많은 난관을 겪었다.

그녀의 커피 농장 면적은 육백 에이커로 대략 삼십육만 그루의 커피나무가 재배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영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재정 여력이 없었고 자신이 소유한 육천 에이커의 땅을 은행에 담보로 잡히고 자금을 조달했다. 커피 농장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경제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커피 농사가 농장의 운명을 좌우했다.

커피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강수량이었다. 강수량이 충분했을 때는 커피 수확량이 팔구십 톤 수준이었지만 가뭄이 극심한 때에는 십오륙 톤으로 급락했다. 그녀가 겪었던 세 차례의 흉작은 농장 재정에는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농장을 살려보려 갖은 방안을 모색했다. 거름을 주면 커피 수확량이 늘어날까 해서 소작농들이 키우는 가축의 똥까지 뿌렸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남는 땅에 아마를 심었지만, 가공 기술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산림업이나 목장업도 검토했지만 신통한 결론은 얻지 못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1929년의 수확량은 사십 톤밖에 되지 않았고 그해 말에 발생한 대공황으로 커피 가격이 삼사십 프로 폭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뚜기 떼의 연이은 습격으로 농장 대부분은 초토화되었다. 그녀는 더 버티지 못하고 토지 회사에 자신이 소유한 땅을 토지 회사에 넘겼다. 연인이었던 데니스 핀치해턴이 1931년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농장 생활을 정리하고 아프리카에 이별을 고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민준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도시 주택가에 들어선 동네 서점을 배경으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각자 사연이 있는 서점 주인 영주, 바리스타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작가 승우, 단골손님 정서, 고등학생 민철과 그의 엄마 희주 등이 휴남동 서점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치유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 시대의 아픈 청춘인 민준이 커피를 통해 자기중심을 잡고 삶의 의미를 알아 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민준은 단추는 있는데 끼울 구멍이 없는 신세였다. 그는 서울의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해야만 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우수한 학점과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은 바늘구멍이었다. 그는 두 개의 면접 스터디에 참여해 진지하게 실전 연습했지만 소용없었다. 기다리는 것은 백수 생활이었다.

그는 길거리에서 휴남동 서점의 바리스타 구직 공고를 보고 찾아갔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커피숍 아르바이트 경력이라도 살려보려고 지원했다. 다행히 그가 내린 커피 맛이 서점 주인 영주의 맘에 들었다. 영주는 서점 커피 코너의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원두를 조달하는 일까지 맡기며 로스팅 업체 고트빈을 소개했다.

풋내기 바리스타였던 그가 커피를 제대로 알아 가게 된 것은 고트빈 대표 지미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영주가 바리스타를 뽑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미는 손님인 척하며 그가 내린 커피를 맛봤다. 그리고 그가 커피 내리는 소질이 있음을 알아챘다. 지미는 ‘바리스타라면 자기가 쓰는 원두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라며 그를 로스팅 가게로 불렀다.

고트빈을 방문한 그를 지미는 커피의 세계로 인도했다. 지미는 커피의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염소의 이야기에 착안해서 업체 이름을 정했다고 알려 줬다. 그는 생두에서 커피 맛을 망치는 결점두를 골라내는 핸드픽 과정, 커다란 연필깎이처럼 생긴 로스팅 기계에서 생두를 볶아 원두를 만드는 과정, 원두에서 다시 핸드픽 하는 과정을 둘러봤다. 그리고 원두 분쇄 정도에 따라 추출하는 방법과 맛의 차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커피나무와 커피 열매, 원두에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가 있으며 향에 차이가 있음도. 지미는 같은 커피나무라도 재배하는 고도가 다르면 커피 향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낮은 지대 원두에서는 무난하고 은은한 향이 나고 높은 지대의 원두에서는 시큼한 내와 과일이나 꽃에서 나는 향이 섞여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고트빈을 찾았지만, 횟수를 늘려 하루걸러 한 번꼴로 방문했다. 산지마다 맛이 다른 원두를 블렌딩하여 커피 맛을 조절하는 법도 배웠다. 그는 지미와 함께 핸드 드립으로 커피 내리는 법을 익혔다. 그는 커피 내리는 일에 빠져들었고 원두 조합에 창의성을 발휘했다. 휴일에도 서점에 나와서 붙박이 손님들에게 시음을 부탁했고 자신이 블렌딩하고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가 어떤 평을 받을지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 내뿜으며 궁금해 했다. 그는 바리스타 일에 몰입하였고 일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는 커피 맛 조율을 더 잘하기 위해 매일 고트빈에 들렀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 로스팅을 배웠다. 지미와 로스터에게 커피를 내려 주고 엄정한 평가를 받았다. 지미는 그가 커피 맛을 조절할 수 있는 뛰어난 수준의 바리스타라고 인정했다.

그는 커피를 내릴 때는 커피에만 집중했고 현재에 살 수 있었다. 그는 커피를 통해 성숙해졌으며 자신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점에 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커피 내리는 것도 예술이다. 창조적인 일이야. 같은 원두를 사용해도 오늘 맛이 다르고 내일 맛이 달라. 온도, 습기, 내 기분, 서점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거든. 이걸 조율하는 게 기분 좋아.”


〈커피 칸타타〉의 리스헨


〈커피 칸타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커피 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해 작곡했다. 원제목은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BWV 211〉로 ‘조용히 입 다물고, 떠들지 말아요’라는 말이다.

그는 1723년에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의 음악 책임자로 부임했다.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부업으로 부족한 수익을 충당했다. 그는 대학생 연주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의 지휘를 맡았으며, 악단을 위해 만든 곡들은 커피 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었다. 커피 하우스의 주인은 자신의 가게 ‘짐머만’을 홍보하려고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커피 칸타타〉가 탄생했고 1734년에 커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커피 칸타타〉에는 커피에 푹 빠진 딸 리스헨(Lieschen: 봉선화, 소프라노)과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쉬렌드리안(Schlendrian: 구닥다리, 베이스), 해설자(Erzähler, 테너)가 출연한다. 〈커피 칸타타〉는 모두 열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피를 못 끊겠다는 딸에게 아버지가 신랑감을 구해주겠다고 어르지만, 딸은 커피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줄거리다.

그녀가 커피에 얼마나 빠져 있는지 네 번째 곡 ‘리스헨의 아리아’를 들어 보자.

“오!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 감미롭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지. 오, 오, 정말 커피 맛은, 오, 오, 오, 얼마나 달콤한가. 오,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 감미롭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지.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다고.”

그녀는 연인의 키스보다, 최고급 와인보다 커피가 좋았다. 너무나 좋아하는 커피를 하루에 세 차례 이상 마시지 않으면 신경이 너무 곤두서 말라비틀어진 고기 조각처럼 될지 누가 알겠는가.

“커피, 커피, 커피를 마셔야만 해, 나는.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내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다면, 아, 아, 그렇다면 커피를 따라주세요. 아, 그렇다면 커피 한 잔 따라주세요.!

커피, 커피, 커피를 마셔야만 해, 나는.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내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다면, 아, 아, 아, 그렇다면 커피를 따라주세요. 커피 한 잔 따라주세요. 커피, 커피, 아, 그렇다면 커피를 따라주세요. 아, 그렇다면 커피 한 잔 따라주세요!”

그녀에게는 결혼 무도회보다, 신상옷보다, 금은 장신구보다 커피 한 잔이 더 소중했다. 집안에 갇혀 창문 밖조차 내다보지 못해도 커피 한 잔이면 문제없었다.

“오!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 감미롭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지. 오, 오, 커피 맛은, 오, 오, 오, 얼마나 달콤한가. 정말 달콤해. 참 달콤하지. 오, 참 달콤해. 오, 커피 맛은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 감미롭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지. 무스카텔 와인보다 순하다고.”

바흐 시대에는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있는 원두 십칠 그램 가격이 방적공의 하루 임금에 맞먹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여자가 커피를 마시면 불임과 히스테리를 유발한다는 오해도 있었다. 아버지가 딸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압박하고 어르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아버지가 궁리 끝에 신랑감을 구해줄 테니 커피 끊으라고 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당장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커피 대신에 신랑을 얻을 수 있다며 좋아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신랑감을 찾아 나서자 그녀는 몰래 이렇게 방을 붙였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조항을 결혼 계약서에 적어 넣지 않고, 그 자신에게 약속하지 않는 어떤 구혼자도 집안에 발을 들여선 안 됨!’

하기는 고양이가 쥐를 내버려 두는 게 쉽지, 어떻게 젊은 처자들이 어떻게 커피를 끊을 수 있을까. 어머니도 마셨고 할머니도 마셨는데, 그녀가 커피를 마신다고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커피 한 잔에는 다양한 맛과 향이 어우러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도 들어 있다. 서리 맞아 갈색으로 시든 커피나무를 보며 망연자실한 농장주,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바리스타, 들뜬 마음으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처녀의 이야기와 같은. 커피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니 또 어떤 이야기가 나를 맞을지 설렌다.

▣ 참고 자료

- 카렌 블릭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 2008

-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클레이하우스, 2022

- 알랭 스텔라, 『커피』, 강현주 번역, 창해, 2001

- 김준, 『커피』, 김영사, 2004

- “[클래식,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커피 사랑‘커피 칸타타’”, https://konnect.news/[클래식,-그-뒤에-숨겨진-이야기]-음악의-아버지-바흐의-커피-사랑‘커피-칸타타’-p532-128.htm

- “바흐의 생애 : 라이프찌히시대(1723~1750)”, http://www.greatjsbach.net/biography6.php3

- “요한 세바스찬 바흐 〈커피 칸타타〉 작품번호 211”, http://www.doctor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6868

- “[조홍근의 푸드테라피] 커피가 건강에 좋은 이유 & 나쁜 이유”,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170519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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