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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이야기

by 메티콘

∎ 제인 오스틴과 10파운드 화폐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은 2017년 9월부터 10파운드 지폐의 인물을 찰스 다윈에서 제인 오스틴(Jane Austen)으로 변경하였다. 새로운 지폐의 한쪽 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한 여성이 홀로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는 모습, 마차가 대정원을 달리는 광경, 깃털 펜, 그리고 성당의 이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I declare after all there is no enjoyment like reading!”이라는 문구도 삽입되어 있다.

지폐의 도안을 구성하는 각 이미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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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홀로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는 여성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다. 『오만과 편견』의 34장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모두들 집을 떠나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에 대한 분노를 최대한 폭발시키기로 작심한 듯 켄트에 와 있는 동안 언니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모두 꺼내어 살펴보기로 했다.


미국의 사회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이사벨 비숍(1902-1988)은 E. P. Dutton & Company에서 1976년에 출간한 『Pride and Prejudice』에 삽화를 기고했다. 이 이미지는 그녀가 해당 장면에 맞춰 그린 삽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마차 한 대가 달리는 배경의 대정원은 영국 켄트주에 있는 가드머샴 대정원(Godmersham Park)이다. 이 대정원은 제인 오스틴의 형제인 에드워드 오스틴 나이트가 거주했던 곳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미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마차를 타고 자주 이 대정원을 찾았으며, 이곳은 그녀의 여러 소설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제인 오스틴은 이미지에 나타난 것과 같은 깃털 펜으로 그녀의 작품을 집필했다. 영국 햄프셔주의 챠톤(Chawton)에 위치한 제인 오스틴 하우스 박물관에는 엘리자베스 베넷이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의 팔각 책상과 깃털 펜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은 윈체스터 대성당이다. 이곳에는 제인 오스틴의 묘지가 있다. 제인 오스틴이 윈체스터 대성당에 안장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I declare after all there is no enjoyment like reading!”은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문구이다. 우리말로는 ‘정말이지 독서처럼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문구를 삽입한 이유에 대해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제인 오스틴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언뜻 보면 독서를 권장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이지만, 이 문구가 등장하는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빙리 양의 관심은 자신이 직접 읽고 있는 책뿐만 아니라 다아시의 독서를 지켜보는 데도 쏠려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을 하거나 그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들여다보거나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상대방을 대화로 끌어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여 독서만 계속했다. 순전히 다아시가 읽고 있는 책의 두 번째 권이라는 이류로 골랐을 뿐인 책에 흥미를 느껴보려고 애쓰던 그녀가, 마침내 싫증이 났는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말했다. “저녁 시간을 이렇게 보내니 참 즐겁네요! 정말이지 독서처럼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 책 말고 다른 일은 얼마나 빨리 물리는지! 제게 집이 생겼는데 거기 멋진 서재가 없다면 정말 불행할 거예요.”

이 문구는 빙리 양이 다아시 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독서에 흥미가 없으면서도 마치 독서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는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의 설명은 아이러니하다.

영국 중앙은행이 2017년에 제인 오스틴을 1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그 해가 제인 오스틴의 사망 200주년이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제인 오스틴 선정의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다. 이후 2017년 3월 29일 탈퇴 조항을 발동,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에 나섰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의 초상으로 변경된 지폐가 9월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 중앙은행이 영국의 고립주의를 가장 잘 대표할 인물로 제인 오스틴을 선정한 것은 아닐까?

제인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에 태어나 1817년 7월 18일에 사망했다. 이 시기의 유럽은 격동의 시기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1803년부터 1815년까지 나폴레옹 전쟁으로 전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러나 영국은 섬나라의 지리적 이점 덕분에 전쟁터가 되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자, 나폴레옹은 더는 영국 본토를 넘보지 못했다.

『오만과 편견』을 비롯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서는 유럽 대륙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찾아보기 어렵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교들은 용감한 군인이 아니라 좋은 신랑감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제인 오스틴의 사촌 엘리자의 남편은 프랑스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불행한 상황을 맞았지만,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반영을 찾아볼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시기의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무관한 세상처럼 보인다.

지폐 도안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베넷이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브렉시트 상황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등을 지고 작은 영국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의 억측일까?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잉글랜드 남부 윈체스터 성당에서 신권을 발표하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닌 오스틴의 소설은 첫 출간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지폐는 영국의 역사와 위대한 시민들의 공헌을 기억하는 저장소”라고 덧붙였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의 말에는 제인 오스틴이 현재 영국이 처한 상황에 강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는 숨은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 제인 오스틴과 헨리 오스틴


헨리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출판하고 널리 알리는 데 가장 크게 도움을 준 인물이다. 그는 제인 오스틴의 손위 오빠로, 그녀는 그가 그녀가 원하는 영웅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는 돈을 좇아 결혼하여 런던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는 제인 오스틴에게 전화위복이었다. 그가 런던에 살면서 동생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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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여정에 헨리는 옥스퍼드셔에 있는 워렌 헤이스팅스의 사유지인 데일즈퍼드에 들러 그 대단한 인물에게 제인이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의 작가라고 말한다. 그러고 런던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소설 사본을 보냈다. 제인은 헨리가 자신의 비밀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챘다. 제인은 프랭크에게 이렇게 썼다. ‘그런 식으로 한 번 소문이 나면 얼마나 빨리 퍼지게 될 걸 모르나! 그런데 헨리 오빠는, 그 대단하신 인물은 한 번도 아니고 몇 차례나 말을 흘리고 다녔어.’

제인은 헨리를 많이 좋아했다. 그와 함께하면 기분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아주 크기 때문이기도 했다. 헨리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수잔」을 팔았다. 그는 에거턴이 『이성과 감성』을 출판하도록 주선했는데, 출판에 드는 비용은 그가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직접 인쇄기를 움직여서 소설을 인쇄하기도 했다. 헨리도 자신이 동생의 바람을 저버리는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제인에게 로버트 커 부인이 『오만과 편견』을 좋아했다는 말만 전했다. 하지만 조카 패니에게는 자신이 부인에게 작가의 신원도 밝혔다고 고백했다. 제인과 정반대 기질을 지녔던 헨리로서는 그녀가 익명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42세의 나이로 사망한 제인 오스틴은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혔다. 윈체스터 대성당은 영국에서 유서 깊은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앵글로색슨 왕조의 왕들이 안치된 곳이다. 그가 동생이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힐 수 있도록 주선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동생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제인 오스틴과 그의 관계를 살펴보면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가 떠오른다. 만약 백아에게 종자기가 있었다면, 제인 오스틴에게는 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제인 오스틴이 절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제인 오스틴의 가치를 미리 알았을 것이며, 제인 오스틴이 윈체스터 성당에 안장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확신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참고 문헌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류경희 역, 시공사, 2019.

- 『제인 오스틴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존 스펜스, 송정은 역, 추수밭,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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