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상징물 톺아보기
한 편의 영화에는 여러 상징물이 포함되어 있다. 상징물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는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도 있지만, 눈을 씻고 꼼꼼히 살펴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때로는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를 경우, 상징물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 영화의 의미와 재미가 반감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를 더 깊이 즐기기 위해서는 영화 속 상징물들의 함의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제가 친구들과 함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기적〉에는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징물이 등장한다. 내가 살아온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기적〉의 배경이 된 일본의 시대적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영화의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 곳곳에 나타난 상징물 중에는 생소한 것이 많았고, 그것들이 전하는 메시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생소함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적 차이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기적〉 속에 나타나는 여러 상징물을 살펴보고 그 상징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상징물은 오사카의 태양의 탑, 코이치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엠블럼, 교실에 걸린 액자와 현판, 가고시마의 명과 카루칸, 사쿠라지마 화산의 분화, 완행열차와 신칸센, 그리고 다니카와 슌타로의 「산다」이다. 영화는 다른 예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제작자의 손을 떠나면 관객과 소통하게 된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러한 상징물을 등장시킨 의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나는 〈기적〉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 오사카의 태양의 탑
부모의 이혼으로 가고시마에서 엄마와 살게 된 코이치는 후쿠시마에서 아빠와 함께 사는 동생 류노스케와 전화 통화를 하며 ‘태양의 탑이 행정 예산 재평가로 사라질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날 밤 태양의 탑이 해체되는 악몽을 꾸게 된다. 오사카 만박기념공원에 있는 태양의 탑은 가족이 흩어지기 전 함께 놀러 갔던 장소로 코이치에게는 가족의 재결합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 상징물이 행정 예산을 이유로 사라진다는 뉴스에 코이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양의 탑은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만국박람회의 주제관 중 하나이다. 일본의 예술가 고 오카모토 타로의 작품으로 박람회가 끝난 후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보존을 원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보강 공사를 거쳐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태양의 탑에는 현재, 과거, 미래를 나타내는 세 개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의 지하 전시장에는 생명의 나무가 전시되어 있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과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우주 공간의 범위(Habitable Zone, HZ)가 존재할 확률은 약 100억 분의 1에서 1조 분의 1일 정도이다. 게다가 지구의 일생 중 다세포 생명이 나타날 수 있는 기간은 전체 기간의 십 분의 일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탑은 코이치 가족의 추억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표상하는 기적(奇跡)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코이치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엠블럼
〈기적〉은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제가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기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가족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가족의 결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서로 소통하려는 전화 한 통조차 나누지 않는다. 코이치의 전화를 받는 아빠와 류노스케의 전화를 받는 엄마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뿐, 다시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가족 전체의 애정보다 코이치와 류노스케의 형제애(兄弟愛)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제애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코이치가 다니는 가고시마시의 사카모토다이 초등학교 엠블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이치와 급우들의 교복에 새겨진 엠블럼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사카모토다이의 ‘사(サ)’와 유사한 엠블럼의 모양은 두 아이가 어깨동무하는 우애(友愛)의 모습을 나타낸다. 단순히 코이치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복에 찍힌 엠블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마모토에서 형제가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카루칸을 먹고 키를 재는 장면을 보면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가고시마의 엄마와 코이치, 후쿠오카의 아버지와 류노스케가 모두 함께 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비록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헤어지지만, 형제는 사카모토다이 초등학교의 엠블럼처럼 다시 만나 우애를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교실에 걸린 액자와 현판
코이치의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프린트하여 제출하라고 하자 한 학생이 코이치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선생님이 “아버지가 안 계신 학생, 손을 들어!”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선생님의 뒤쪽에는 한 사람의 초상화 액자와 붓글씨 액자가 보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이다. 사이고는 가고시마 지역을 지배했던 사쓰마번(薩摩藩)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오쿠보 도시미치와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였다. 붓글씨는 사이고가 직접 쓴 것으로 그의 좌우명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이 적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기적〉을 제작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가고시마 출신의 증조할아버지를 언급했다. 고레에다(是技)라는 성(姓)도 가고시마현 고유의 것이며 감독의 선조가 대대로 가고시마에 거주해온 것으로 보인다. 비록 고레에다 감독이 도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가고시마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막부 정치를 타도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복구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자부심은 가고시마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사이고의 초상화와 좌우명 액자가 있는 것도, 고레에다 감독이 이를 영화에 선명하게 드러낸 것도 가고시마의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가고시마의 명과 카루칸
코이치의 외할아버지는 과자점 대박(おおさこ, 大迫)을 운영하다가 오 년 전에 가게 문을 닫고 은퇴하였다. 외할아버지의 소원은 가고시마의 명과 카루칸(かるかん, 軽羹)을 재현하는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코이치를 데리고 카루칸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카시야(明石屋)를 찾는다. 외할아버지는 구매한 카루칸을 코이치와 나눠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카루칸은 참마, 설탕, 찹쌀가루, 물로 만든 화과자로, 가고시마의 특산품이다. 카루칸(軽羹)은 ‘가벼운 양갱(羊羹)’이라는 의미로 부드럽고 푹신한 식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카루칸은 17세기에 사쓰마번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 당시 어떤 과자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20세기 후반 아카시(明石) 출신의 제과 장인 야시마 로쿠베(八島六兵衛)에 의해 현재의 카루칸이 만들어졌다.
외할아버지는 직접 재료를 구입하여 코이치와 함께 카루칸을 만든다. 참마는 껍질을 벗겨 갈아내고 물을 조금 첨가해 묽은 액체로 만든다. 여기에 설탕을 넣고 서서히 남은 물을 더하면서 잘 섞어 고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찹쌀가루를 넣고 다시 섞는다. 섞은 반죽을 찜통에 넣어 충분히 익히면 탄력성이 있는 백색의 스펀지 형태의 카루칸이 완성된다. 만든 카루칸을 먹어본 사람들이 색을 벚꽃색과 같은 핑크로 하자고 제안하자, 외할아버지는 단박에 거절한다. 카루칸은 단순한 화과자가 아니라 질실강건(質実剛健)한 사쓰마 기질(薩摩気質)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 사쿠라지마 화산의 분화
코이치는 사쿠라지마의 화산이 폭발하면 가고시마에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어 가족들이 다시 오사카에 모여 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코이치의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글이 있다. 피천득의 『수필』에 나오는 대목이다. “10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종석은 자신의 책 『고종석의 문장』에서 두 남녀를 맺어주기 위해 전쟁이 10년 먼저 터져야 한다는 수필가의 내면에 있는 천박함을 지적했다. 나도 고레에다 감독이 수필가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의아해했다.
사쿠라지마(桜島, 벚꽃 섬)는 가고시마 앞바다에 있는 화산섬이다. 사쿠라지마의 중심에는 화산재를 내뿜는 쇼와 화구(昭和火口)가 있다. 사쿠라지마 화산의 폭발은 지리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사쿠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며, 쇼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천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쿠라지마 화산의 폭발은 일본이 과거의 군국주의로 회귀하여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표상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2004년에 고이즈미 내각이 결정한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다. 그는 일본의 군대가 철저히 비군사적으로 공헌해야 하며, 이를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코이치는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불행에 빠지는 화산 폭발의 소원을 철회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군국주의의 부활이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완행열차와 신칸센
고레에다 감독이 〈기적〉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규슈 신칸센 전 노선 개통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JR 규슈의 의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레에다 감독의 기차에 대한 애정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기차를 타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고 글이 술술 쓰인다고 말한다. 특히 신칸센에 대한 호감이 높았다.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 때도 각본 아이디어의 구상과 초고 완성을 신칸센 열차 안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기적〉의 아이디어 역시 신칸센 열차에서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 만큼 〈기적〉에서 신칸센 열차가 영화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고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신칸센 열차 내부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신칸센 열차가 등장하는 것도 텔레비전 화면과 아이들이 소원을 비는 순간의 장면뿐이다. 영화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신칸센 선로는 콘크리트 교각 위에 세워진 접근이 차단된 철로에 불과하다.
〈기적〉에는 오히려 완행열차가 주로 등장한다. 코이치와 친구들이 최초로 할머니가 사라지는 기적을 목격한 것도 완행열차가 지나간 후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들이 신칸센이 교차하는 순간에 소원을 빌러 가는 교통수단도 완행열차이다. 가고시마에서 구마모토로,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완행열차 안에서 아이들은 느린 기차 여행을 즐긴다. 소원을 빈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도 완행열차를 이용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신칸센 개통을 기념하는 영화에서 완행열차를 주요 상징으로 등장시킨 것은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쇠퇴하게 될 느린 열차를 아쉬워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완행열차가 높은 신칸센 선로 아래로 사라지는 장면은 이러한 의미를 잘 전달해 준다.
∎ 다니카와 슌타로의 「산다」
코이치가 친구들과 함께 구마모토로 소원을 빌러 가기 전, 국어 시간에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는 일본의 국민 시인으로 알려진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의 「산다(生きる)」이다.
다음은 「산다(生きる)」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보는 것
재채기하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륨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만나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막아내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태아의 첫울음이 울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가 날갯짓한다는 것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코이치는 아빠로부터 개인적인 일보다 음악이나 세계와 같은 큰일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코이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런 코이치에게 「산다」를 낭송할 기회를 준다. 코이치는 신칸센 열차가 교차하는 순간, 화산 폭발이라는 자신만을 위한 기적이 일어난다면 잃게 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한층 성숙해진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참고 문헌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 이지수 역, 바다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