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당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나와 한 몸이 되어준 옷들과 이별을 하고 나를 체중을 오롯이 감당해 준 이불 커버를 모아서 밖에 내놓고 퇴실 준비를 마쳤다. 동아리 사람들과 만나 11시 30분에 점심을 주는 공양실로 향했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얼른 먹고 시흥으로 출발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일찌감치 공양실 문 앞에 진을 쳤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먹으려는 욕심이었다. 어수선하게 서있는 우리의 모습이 거슬렸는지 공양실 스님이 문을 열어주며 들어와서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배식이 시작되자 마지막 공양이기도 하고 시장하기도 해서 밥과 반찬을 잔뜩 퍼 담았다. 수덕사 공양실의 음식들은 지난 두 끼니와 마찬가지로 감칠맛이 났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으니 속이 든든해졌다. 밥이 하늘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에겐 부처님이었다. 밥의 가피를 받아 시흥으로 가는 막히는 길도 걱정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공양을 마치고 짐을 챙겨 수덕사로 들어온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송화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액셀을 밟으니 차가 부드럽게 시흥을 향해 나아갔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표어는 ‘비움’이다. 안내장 맨 앞에는 비움을 노래한 경허선사의 시가 나와 있다.
일 없는 게 일이 되어 〔無事猶成事〕
빗장 걸고 대낮에 자네 〔掩關白日眠〕
새들이 내 홀로 있는 줄 알고 〔幽禽知我獨〕
창 앞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네 〔影影過窓前〕
수덕사에 들어올 때는 경허선사의 말대로 일 없이 가만히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돌아가려니 했다. 그런데 템플스테이에서의 이틀은 나를 많은 것들로 채우고 또 채워 주었다. 초은 스님과 J 팀장님, 템플스테이 보살님들, 정혜사의 지상 스님, 템플스테이를 함께한 참가자들과의 인연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공양주의 정성이 들어간 맛깔스런 음식들은 내 몸의 피와 살이 되었다. 덕숭산의 푸른 수목은 내 눈을 정화했으며 맑은 공기는 폐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불전사물 소리와 예불 소리는 내 귀에 아직도 맴돌고 있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메모지에는 글감이 빼곡했다. 결코 비우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템슬스테이 상의 왼편 가슴에는 ‘山泉 수덕사’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의미를 ‘산속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 같은 수덕사’라고 풀이하고 싶다.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다시 찾아 그 옷을 입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