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름의 즐거움” 가족들과 외식하러 나선 식당에서 본 홍보 문구다. 각각 일인분씩 주문했는데도 음식이 푸짐하게 나왔다. 찌개와 밥과 반찬을 먹다 보니 배가 불러왔다. 그런데도 냄비와 접시에는 음식들이 남았다. 음식을 남기면 벌 받는다는 말을 들으며 생긴 의식과 식탐으로 남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하지만 배는 이미 음식으로 가득 찼고 먹는 게 점차 고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고 식당을 나왔다. 배부름이 괴로움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적 나는 뭐든지 잘 먹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에 갔다 오니 집안에 맛있는 보양탕 냄새가 진동했다. 농번기를 맞아 체력이 약했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었다. 배가 고팠던 내가 어머니에게 무슨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른척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나는 눈치 없게 계속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연거푸 중얼거렸다.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데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가만히 부엌으로 나를 데리고 간 어머니는 커다란 사발에 보양탕을 가득 채워서 내밀었다. 배불리 먹은 저녁이 채 꺼지기도 전에 사발을 채운 보양탕을 바닥까지 싹싹 핥았는데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는 가끔 그때 내가 얼마나 잘 먹었는지 그리고 더 먹여주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곤 했다. 아내도 데이트 시절 나의 먹성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이십대 후반 처음 소개팅을 나가 만나 식사를 하러 갔는데 커다란 대접에 밥을 먹고 또 먹어서 놀랐다고 한다. 또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말없이 끝까지 먹는 걸 보고 제발 얘기를 하며 천천히 먹으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배부르다는 게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 된 것은 나이 먹어감에 따라 소화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식욕(食慾)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식도락(食道樂)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제는 욕(慾)과 락(樂)이 고(苦)가 되었다. 식도락가로 유명한 소동파는 〈송년 모임〔別歲〕에 차운하여〉라는 시에서 “젊음이 다시는 오지 않나니(少壯不復來) 사양 말고 배불리 취해보세나(醉飽莫相辭)”라고 노래했다. 젊었을 때야 산해진미가 즐겁지만 나이 먹어 늙으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아쉬워한 구절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점심에 먹은 국밥에 속이 얹힌 듯 편치 않다. 배부름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