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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에 내린 눈

by 메티콘

절기가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를 지나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을 향하고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 길을 달리며 싱그러운 햇살을 즐긴다. 신록의 계절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새로 나온 푸른 잎들로 나무는 푸르기만 하다. 그런데 줄지어 선 나무들이 눈이 소복이 내린 듯 새하얗다. 백설 같은 무더기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도 살짝살짝 흔들리기만 할뿐 떨어져 내리지 않는다. 이팝나무에 꽃이 함빡함빡 피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나무에 꽃이 활짝 핀 자태가 밥사발에 흰 쌀밥(이밥)을 담아 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청자에 백미로 지은 밥이 그득한 듯이 보인다. 꽃에서 배부르게 먹는 밥을 연상한 선조들은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길조로 여겼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입하에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라고 한다. “이팝, 이팝, 이팝.” 자꾸 되뇌다 보니 이밥과 입하가 한데 섞여 만들어졌지 않을까 싶다.

이팝나무의 원산지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인 만큼 한자 이름과 일본어 이름도 있다. 한자 이름으로는 육도목(六道木), 다엽수(茶葉樹), 유소수(流蘇樹)가 있으며, 일본어 이름은 히토츠바타고(ヒトツバタゴ), 백반목(白飯木), 난쟈몬쟈(ナンジャモンジャ)가 있다. 육도목는 중국에서 사람이 죽어 저승 갈 때 관속에 쌀을 넣어 주는 관습에서 유래했다. 육도란 망자가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이다. 다엽수는 이팝나무 잎을 차(茶)를 대신해서 사용한 데서 말미암았다. 유소수는 이팝나무의 꽃이 깃발이나 가마 등에 매달린 술 장식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유소(流蘇)는 중국에서 “흐르는 술”을 의미한다. 히토시바타고는 단엽(一葉)을 가진 타고(タゴ)라는 의미이다. 타고는 잎이 복엽인 물푸레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난쟈몬쟈라는 명칭이 유래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옛날 미토 코몬이라는 사람이 당시의 쇼군으로부터 “저것은 어떤 나무입니까?(何じょう物じゃ)”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하여 “무엇입니까?(なんというものか)”라고 반문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팝나무의 학명은 Chionanthus retusa LINDL. et PAXTON이며 영어 이름은 Retusa fringetree이다. 학명의 Chionanthus는 눈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어에서 “chion”은 의미하며 “anthos”는 꽃을 의미한다. Retusa fringetree는 이팝나무의 잎과 꽃잎의 형태에서 유래했다. Retusa는 라틴어로 잎이 뭉툭하고 끝이 뭉툭한 모양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fringetree의 fringe는 꽃잎이 실을 꼬아 장식으로 만든 술과 같다는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한자 이름 중 유소수(流蘇樹)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른 계절에 눈처럼 화려하게 핀 이팝나무 꽃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드리워져 있다. 옛날에 오뉴월의 다른 이름은 보릿고개였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은 춘궁기. 배고픈 민초들의 눈에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들판 너머에 보이는 이팝나무 꽃은 꼭 가마솥에서 갓 지은 밥처럼 보였을 것이다. 배고픔의 시절에 무리한 조세까지 더해져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양경우(1568년, 선조 1∼미상)는 이런 백성들의 고난을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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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죽직죽 (稷粥稷粥)

피를 끓여 죽 쑤어도 나쁘지 않으니 (煎稷作粥也不惡)

지난해 흉년으로 백성들 굶주려 (去年失秋民苦飢)

푸성귀도 마다하지 않을 터에 피죽이랴 (茹草不辭況稷粥)

조팝꽃 이팝꽃도 먹지 못하는데 (粟飯花稻飯花喫不得)

네가 피죽을 외친들 무슨 소용이랴 (汝呼稷粥復何益)

마을 아전 손에 장부책을 들고 와 (里胥手持官帖來)

거두는 조세는 항목도 많구나 (租稅之徵多色目)

아, 피죽으로도 배 채우지 못하는데 (嗚呼稷粥充腸不可得)

민가의 조세가 어디에서 나오랴 (民家租稅從何出)

이 시는 양경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47년에 간행한 제호집(霽湖集)에 수록된 시로 이팝나무 꽃을 도반화(稻飯花)로 표현했다. 직박구리(稷粥)가 소란스럽게 울어대는 시절에 산과 들에 아무리 새하얀 조팝나무 꽃과 이팝나무 꽃이 만발해도 그림의 떡일 뿐인 굶주린 사람들에게 아전의 조세 장부는 호랑이보다 무서웠다.

이팝나무에는 꽃과 연관된 전설들이 전해진다. 그 중 한 전설은 이렇다.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순종하며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고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다. 온 동네 사람들은 이 며느리를 칭송하는 한 편 동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큰 제사가 있어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쌀밥을 짓게 되었다. 항상 잡곡밥만 짓다가 모처럼 쌀밥을 지으려니 혹 밥을 잘못지어 시어머니께 꾸중을 들을 것이 겁난 며느리는 밤에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미가 부엌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멧밥을 며느리가 먼저 퍼 먹는다며 온갖 학대를 하셨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그 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고, 이듬해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나무 가득 피워냈다. 이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동네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팝나무 전설이 슬픈 사연을 담고 있든 효심을 전하든 그 이야기들에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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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는 세계적으로 보면 매우 희귀한 수종이라고 한다. 또한 이팝나무는 온대지방에 서식하는 낙엽수로 우리나라에서 자생할 수 있는 북방한계가 경기도까지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서 이팝나무와 그 꽃을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팝나무 아래서 자전거를 멈추고 잎새를 뒤덮은 꽃무더기를 올려다본다. 이팝나무 꽃을 보는 시선은 시절이 변하여 배고픔을 면하려 떠올리던 뽀얀 쌀밥에서 새파란 나뭇잎 위에 덮인 눈꽃으로 바뀌었다. 이 계절이 훌쩍 가버리기 전에 입하에 내린 눈을 하염없이 바라다본다.


▣ 참고문

1. 임원현, 김용수(2005), 이팝나무의 잔존형태와 문화적 의의, 한국전통조경학회지, vol.23, no.3, pp. 25-36.

2.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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