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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by 메티콘

사월 말부터 날씨가 초여름같이 무덥더니 어린이날부터 연 사흘간 비가 내렸다. 세게 내렸다 약하게 내렸다 하며 그치지 않는 것이 마치 장마철 같았다. 일요일인 어린이날과 대체휴일인 월요일에 잡힌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축소되었다. 출근하는 화요일에도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렸기에 나는 차를 끌고 출근했다. 벅벅대는 와이퍼가 물줄기를 치워내는 유리를 응시하며 앞차를 따라갔다. 저녁 퇴근길에도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빗발이 흩날렸다.


어버이날인 수요일 이른 아침에 유리창으로 햇살이 날아들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색이었다. 비 온 후여서인지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다. 나는 이제 옷장에 들여놓아야 할까 고민했던 외투를 다시 입었다.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옥구천 자전거 도로로 접어들었다. 며칠 사이에 풀들이 몰라볼 정도로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나뭇잎들은 더욱 무성해져서 웬만한 가지들을 초록 무더기에 묻혀 버렸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데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나를 맞았다. 아까시나무 꽃 내음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둑 양쪽 기슭에 높다랗게 자란 아까시나무들이 꽃들로 온통 새하얀 것이 마치 눈이 내린 듯했다. 솔솔 부는 바람을 타고 향기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옥구천은 아까시나무 꽃향기로 가득한 골짜기 같았다. 가지에 닥지닥지 붙어 있는 하얀색 꽃들이 보내는 유혹에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하늘거리는 꽃과 잎들의 춤에 취해버렸다. 햇빛을 받은 꽃들은 살랑이며 윤슬처럼 부드럽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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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나무는 옥구천 둑비탈에 무성한 군락을 이룬다. 아까시나무 학명은 Robinia pseudoacacia이다. 굳이 우리말로 바꿔 말하자면 ‘북미지역의 가짜-아카시아’라고 할 수 있겠다. 학명이 아카시아(Acacia)인 나무는 원산지가 오스트레일리아인데 우리가 알고 있었던 아카시아와는 다르다. 우리가 북미지역의 가짜아카시아를 아카시아(Acacia)로 부르게 된 것은 일본을 통해 들여오는 과정에서 착오로 ‘아카시아’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북미 원산의 이 나무(pseudoacacia)가 기존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와 다름을 인지하고 새로운 이름을 모색하다 “아까시나무”라는 변형된 이름을 지어주었다.


자전거 도로에서 가까운 비탈에 자란 작은 아까시나무들에는 은빛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서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휘어질 지경이었다. 한 나무는 자전거 도로 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밑에 들어가 꽃과 잎을 살폈다. 고동색 가지에서 뻗어난 꽃자루에 달린 갈색 컵처럼 생긴 꽃받침에 하얀색 꽃이 나비 모양으로 내려앉은 듯했다. 싸늘한 날씨 때문인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날벌레들이 쉬지 않고 꽃 주위를 맴돌았다. 다음 날 저녁 퇴근길에 그 나무를 다시 찾았는데 보이지 않고 잘려나간 밑줄기만 남아있었다. 통행에 불편하다는 신고가 있어 잘라냈지 싶었다. ‘필시 꽃이 지고 나면 나무가 이전처럼 바로 설 수도 있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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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자 아까시나무 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려한 순백의 꽃이 싸라기눈처럼 길가에 쌓인 광경에 왠지 섭섭한 심정이 들었다. 꽃으로 덮인 길에 자전거를 멈추고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작년까지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옥구천에서 듣지 못했던 듯했다. 작년에도 울었는데 내가 무신경했던 탓이었을까 싶다가도 물이 밝아져서 개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개구리가 우는 이유는 낙화를 슬퍼하기 때문일까?’라는 상상하다 어이없음에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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