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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5)

by 메티콘

정혜사에서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수덕사로 내려왔다. 돌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때는 가파르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 평평한 길을 내려가면서 몸이 앞으로 쏠리다보니 급경사가 느껴졌다. 신발 밑창으로 브레이크를 걸면서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었다. 도로가 완만해지는 지점에 이르자 견성암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왔다. 견성암은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으로 정현주 팀장님이 꼭 들러보라고 한 곳이었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 옆으로 넓게 퍼진 소나무들이 남쪽으로 자그마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전각들을 바라보니 가운데 이층 석조건물인 견성암이 있었고 좌우로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이 한 채씩 자리 잡았다. 견성암 2층에 있다는 법당에 가볼 생각이 들긴 했지만 왠지 비구니 스님들만 있는 곳이라서 주저하다 뒤돌아 나왔다. 명선당으로 돌아와 이부자리를 개서 장롱에 넣고 가지고 온 짐들을 정리했다. 방 한쪽에 마련된 자그마한 탁자에는 볼펜과 템플스테이 후기를 쓰는 분홍색 한지가 놓여있었다. 남는 시간에 몇 자 적어보려다 시흥으로 돌아가서 세세하게 정리해보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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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예정된 초은 스님과 함께하는 걷기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심연당으로 갔다. 박다결 보살님이 청소에 열심이었다. 청소를 마친 보살님은 강당 바닥에 매트를 하나씩 깔았다. 걷기명상 후에 스님이 좌선 수행 체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9시가 되어 스님은 참가자들을 명선당 마당에 도열하도록 했다. 각자 밀짚모자를 받아서 쓰자 스님이 걷기명상 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생각을 내려놓고 발끝을 느끼며 천천히 걸으라고 했다. 스님이 앞장서고 참가자들이 한 줄로 따라 갔다. 완월당을 지나 선수암 앞에서 계곡으로 빠지는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에는 푸른 수목과 꽃들이 한껏 우거져 있었다. 오솔길과 데크 길을 따라 한참을 걷고 나서 큰길로 나왔다. 수덕여관을 지나고 환희대 앞마당을 돌아 나와서 사천왕문을 통과해 심연당으로 복귀했다. 스님과 참가들은 보살님이 깔아 놓은 매트에 앉았다. 스님의 지도에 따라 좌선을 진행했다. 반자부좌 자세를 바로잡고 들숨과 날숨에 신경 썼다. 머리끝에서 서서히 내려오면서 신체를 부위별로 느끼며 살폈다. 좌선 수행이 끝나고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걸으며 무엇을 느꼈냐고 물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생각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스님은 자기는 꽃과 나무와 나비를 보았다면서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한 것이 오히려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다. 내려놓기 위해 더 붙들고 있었다. 쉬운 듯 했으나 결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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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명상 프로그램이 끝나고 초은 스님을 따로 만나 풀지 못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했다. 심연당 데크 탁자 유리 아래 다포(茶布)가 펼쳐져 있었다. 다포에는 百竹是佛에 이어 멀찍이 떨어져 母가 쓰여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려고 찍은 사진을 스님에게 보여주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스님이 이야기하기를 사진 속의 글은 만공선사의 경구인 百艸是佛母(백초시불모)로 말 그대로 풀이하면 온갖 풀들이 다 부처의 어머니라는 말이라고 했다. 다시 새기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지니고 있으니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흥으로 돌아와 그 뜻풀이를 더 찾아보니 이런 말도 있었다. ‘번뇌 망상을 억지로 버리려고 하면 오히려 더욱 일어나는 법이니,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부처님의 어머니, 깨달음의 근원으로 알고 정진하라.’ 과연 맞는 말 같았다. 걷기명상에서 생각을 내려놓으려 하면 할수록 왜 더 생각을 더 붙들고 있었는지 납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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