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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4)

by 메티콘

소설을 읽다 보니 창호지가 환해졌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에 미닫이문을 여니 동아리 사람들이 아침 공양하러 가자고 손짓했다. 책을 덮고 얼른 따라나섰다. 배가 출출하기도 했고 아침 공양에 나오는 누룽지가 일품이라는 말이 기억나기도 해서였다.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고 종지에 물김치를 퍼 담았다. 누룽지를 그릇에 욕심껏 담아 자리에 앉았다. 누룽지 한 숟갈을 먹으니 구수한 맛으로 입안이 가득 찼다. 고춧가루로 불그스레하게 빛깔을 낸 물김치를 떠서 먹으니 매콤 시큼함으로 속까지 개운해졌다. 맛나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노스님 한 분이 공양주들이 식사하고 있는 쪽으로 왔다. 공양주들과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하다 모두 일어나 노스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중에 박다결 보살님에게 물어보니 수덕사의 방장인 우송 스님이라고 했다. 우송 스님은 덕숭총림 수덕사에서 제일 어른이신데 아침 공양은 꼭 하시러 와서 공양주들을 격려하신다고 했다. 산사에서 육십 년 넘게 수행한 여든셋의 노스님의 정정함과 인자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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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양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덕숭산 중턱에 있는 정혜사를 둘러보러 산행을 시작했다. 대웅전 좌측 뒤편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돌계단은 ‘벽초스님의 1080 돌계단’으로 불린단다. 수덕사 2대 방장인 벽초 스님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공부하는 스님들을 위해 1080개의 돌계단을 만들었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계곡 물소리를 따라 서늘한 산바람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데 사면석불이 나타났다. 돌아가며 석불에 합장 인사 올렸다. 상큼한 숲속 공기로 폐를 가득 채우며 나아가니 소림초당, 향운각을 지나고 관음보살입상에 다다랐다. 관세음보살님께 오늘 돌아가는 길이 무탈하기를 기원했다. 이어서 만공선사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만공탑을 지나니 정혜사(定慧寺)로 들어가는 쌍수문(雙修門)이 나왔다.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에 착안하여 절 이름에 호응하는 문 이름을 지었다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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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듯 살짝 열린 널문을 살며시 밀었더니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잡초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돈된 마당에 바위를 쌓아서 조성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들 사이를 울긋불긋한 꽃들이 메우고 있었고 맨 위에는 자그마한 탑 두 기가 세워져 있었다. 서로 다정하게 서있는 것이 꼭 남매 같았다. 탑을 향해 합장 인사를 하고 마당가의 담장으로 갔다. 툭 터진 시야로 들어오는 구릉과 들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실로 장관이었다. 예전부터 덕숭산 일대를 호서의 소금강이 불렀다 했는데 과연 그럴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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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가운데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무 밑에 서니 잎들이 빽빽하여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절 구경을 하고 내려가려는데 원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밀짚모자를 쓴 스님 한 분이 낙엽송풍기를 메고 우리에게 다가 왔다. 스님은 템플스테이 왔냐면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스님에 따르면 마당 가운데 아름드리나무는 보리수라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니 그 나무가 왜 절 마당에 있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후기를 쓰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정혜사에 전화를 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지난 주 일요일에 우리가 만난 스님이시냐고 물었다. 스님은 그렇다면서 정혜사의 살림을 맡아보는 원주(院主) 스님이라고 했다. 법명을 물어보니 지상이라면서 지금 일하느라 바쁘니 문자를 남기면 답해주겠다고 했다. 정혜사가 정갈한 것은 바지런한 지상스님 덕분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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