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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3)

by 메티콘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가까이 양반다리로 앉아있었더니 목과 허리와 다리가 뻐근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채비를 하고 나서 장거리 운전까지 한 터라 졸음이 쏟아졌다. 다음 날 새벽에 예불에 나가려면 일찍 잠들어야 해서 휴대폰 알람을 3시로 맞추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졸리더니 막상 이불을 덮으니 잠이 싹 달아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일까? 내일 새벽에 깰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현재를 사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동안 하는 듯했는데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발이 시린 기운에 눈이 떠졌다. 핸드폰을 켜보니 2시 30분이었다. ‘더 잘까?’ 문종이를 뚫고 들어오는 한기에 그냥 일어났다. 외투까지 껴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기지개를 켜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담장 너머 어둠 속에서 괭이가 소란스럽게 울어 댔다. 멀리 숲속에서는 소쩍새가 세 음절씩 일정한 박자로 짖고 있었다. 사방이 의외로 밝아 외등 때문일까 생각하다 하늘을 보니 보름에서 하현으로 가는 달이 남쪽에서 수덕사를 비추고 있었다. 북쪽 하늘에는 초저녁에 동남방에 있었던 북두칠성이 서남방에 기울어 있었다. 도시의 하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빛이 밝은 달빛을 뚫고 쏟아져 내렸다. 낮에는 사람들 소리에 흩어져버렸던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쏼쏼” 들렸다. 한참을 산사의 밤 분위기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괭이 우는 소리가 멈추고 소쩍새 짖는 소리가 뚝 끊어졌다. 바로 이어 대웅전과 근처 암자에서 희미하게 목탁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3시였다. 아! 덕숭산의 동물들은 도량석에 맞춰 울음을 멈추나 보다. 발걸음을 옮겨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대웅전에서 스님이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웅전 정면에 서서 부처님께 합장 인사를 드리고 지붕을 쳐다보니 덕숭산 능선 위로 북극성이 빛나고 있었다. 북극성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내려온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듯싶었다. 별들의 움직임에 북극성이 중심을 잡아주듯이 사람들의 어지러운 마음이 불심으로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법고각 근처로 모였다. 스님들이 돌아가며 법고를 쳤고 범종 소리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저녁 예불 때처럼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범종 울림이 끝나고 목어와 운판 치자 예불이 시작되었다. 앞에서 인도하는 보살님이 없었지만, 나는 저녁 예불의 기억을 되살리고 스님들을 눈치로 살피면서 무사히 예불을 마치고 명선당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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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양 시간인 5시 50분까지 제법 시간이 남아 잠을 청해볼까 했는데 머리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았다. 호젓한 시간을 메우려고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틈나면 보려고 가져온 최인호 작가의 『할(喝)』이었다. 할(喝)은 큰 소리로 치는 고함을 의미하는데 곧 큰 소리로 고함쳐서 참선자로 하여금 망상을 끊고 깨달음에 다다르게 하는 방편이란다. 작가는 수덕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네 분의 선사인 경허, 수월, 혜월, 만공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엮었다. 무심코 만공선사 이야기 부분을 폈는데 소제목이 ‘김좌진과 만해 한용운’이었다. 청년 김좌진은 만공선사가 장사라는 소문을 듣고 힘을 겨루기 위해 수덕사로 찾아 왔다. 선사는 지지도 이기지도 않는 팔씨름으로 김좌진의 항복을 받고 중노릇을 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김좌진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김좌진은 그 후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사령관이 되었다는 일화가 나왔다. 한용운은 선사가 일제의 총독 미나미를 꾸짖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용운은 선사를 찾아가 왜 더 세게 꾸짖지 않았냐면서 그 기개를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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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가 이르는 곳마다 내 고향인데 〔男兒到處是故鄕〕

몇 사람이나 객의 수심 가운데 지냈던고. 〔幾人長在客愁中〕

한소리 큰 할에 삼천대천 세계를 타파하니 〔一聲喝破三千界〕

눈 속 복사꽃 조각조각 날아가네. 〔雪裡桃花片片飛〕

그 후로 선사와 한용운의 인연은 이어져 선사가 스승인 경허선사의 문집을 낼 때 한용운이 서문을 썼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제 우리가 수덕사에 오기 전에 들른 곳이 만해 한용운 생가지와 백야 김좌진 생가지였다. 그런데 선사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수덕사에서 소설책을 바로 펼치자마자 선사와 김좌진이, 선사와 한용운이 인연을 맺은 이야기가 나왔다니! 과연 우연일 뿐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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