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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풀꽃문학관에서

by 메티콘

점심을 먹고 찾은 풀꽃문학관의 문은 잠겨있었다. “점심시간 12:00~13:00”라고 인쇄된 종이가 유리문에 붙어있었다. 대부분은 직원이 자리를 지키지만 가끔 나태주 시인이 와서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시인이 왔으면 어쩌지. 13:30까지 마곡사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긁지 못한 복권 같은 아쉬움만 남긴 채 문학관 주변을 돌아보았다. ‘풀꽃’문학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풀과 꽃이 지천이었다. 노란 원반꽃을 하얀 설상꽃이 둘러싼 데이지, 붉은 노란 수술과 암술이 넓적한 붉은 꽃잎에 파묻힌 작약, 보랏빛 꽃잎 세 장 위로 암술과 수술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주달개비, 대낮인데도 활짝 피어있는 분홍달맞이꽃, 탐스런 꽃송이를 살포시 감춘 접시꽃 봉오리, 새하얀 면사포를 입은 신부 같은 작약, 데이지를 닮았지만 더 앙증맞은 원평소국.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미처 알지 못한 풀과 꽃이 있었던 듯하다. 문학관은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뒤뜰로 돌아가니 유리문 안에 대충 쌓아놓은 짐들이 보인다. 언뜻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메이와 사츠키가 이사 온 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되면 요술을 부리는 생물이 나와 풀과 꽃을 하늘까지 자라게 할까? 모를 일이다. 그 시간에 와본 적이 없으니. 자물쇠로 닫힌 문학관 내부는 유리창을 통해 대충 살피고 진입로 벽에 그린 시화(詩畵)로 가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네 칸으로 나눠진 벽에는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가 각각 한 편씩 그려져 있다. 〈선물〉 〈풀꽃〉 〈행복〉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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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시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오늘 당신이 웃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를 찾으니 나는 기뻐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선물이듯 당신도 나에게 선물입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문학관에서 만난 풀과 꽃들이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를 사진에 담아 주어서 고마워요. 우리가 누구인지 찾아봐줘서 고마워요. 자세히 알아야 사랑할 수 있어요. 당신도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세요.”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때면 김윤아의 〈Going Home〉을 따라 부르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다. 시는 노래했다. 노래 한 곡, 시 한 편으로도 너는 ‘저녁 때, 힘들 때, 외로울 때’조차 여전히 행복하다고.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동아리 회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시는 내게 일러 주었다. ‘각자의 일정으로 그러지 못할지라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으면 감사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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