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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3. 2021

필경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추모하며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를 읽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시마치킨은 자기의 소임인 필사를 천직으로 아는 9급 문관이었다. 동료들의 놀림이나 짓궂은 행동에도 “날 내버려둬요, 왜 날 모욕하는거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러한 아카키가 단 한 번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강탈당한 외투를 찾아달라는 청을 넣기 위해 어떤 고관 나리를 찾아갔다 호통을 된통 당하고 말았다. 아카키는 자존감이 짓밟힌 엄청난 충격을 받아 심한 열병에 걸렸다. 아카키는 

열에 들떠 헛소리를 내지르다 숨을 거두었다.     


아카키를 요새는 복사기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문서 베끼는 일만 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선조들 대해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의 가계는 문자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그의 선조들의 활동은 시작되었다. 

    

문자는 서기전 4000년 말 두 강 사이의 땅과 이집트에서 행정적 계산 절차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르크에서 발견된, 서기전 약 3000년 경 기록된 텍스트는 여전히 “회계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얼마 뒤 서기전 2800년경에 이르면 “회계관”에서 이미 “필경사”가 되었는데, 이들은 더 이상 점토판 위에 회계항목만을 기입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신의 행동 그리고 땅과 창공에서의 중요한 사건들도 기록하고 있다.     

문명이 발전하고 왕을 중심으로 한 관료체계가 성립됨에 따라 그의 선조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의 선조들은 왕의 관리로 일하면서 왕의 편지에서부터 지상과 하늘에서의 중요한 사건들까지 수많은 기록들이 이들의 손길에서 생겨났다. “어디든 국가의 직책에 있는 필경사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나게 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암흑기에 들어선 중세시대에도 그의 선조들은 꿋꿋이 소임을 다했다. 주로 수도원의 수도사였기도 한 그의 선조들은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는 필사 전용실에서 기록에 열중했다. 필사본 작성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마치며, 겸허한 신앙심으로 옮겨 썼고 완성했다”과 같은 말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선조들의 피땀 어린 필사본에 불경하게 손댄 자들은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희귀 필사본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펼쳐본 자들처럼 말이다. 그의 선조들은 필사본뿐 아니라 증명서, 편지와 같은 일반 서류 작성을 비롯하여 연감, 회의록, 회고록, 연대기 등과 같이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까지 족적을 남겼다. 


15세기 들어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척한 인쇄술은 그의 선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의 책들은 그의 선조들의 필사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구텐베르크 이후로는 활자로 찍어낸 책들이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이러한 인쇄 혁명에도 그의 선조들에 대한 필요성은 줄지 않았다. 활자 인쇄로 대체하기 어려운 행정 문서를 작성하는 일과 여러 증서를 작성하는 일은 여전히 그의 선조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15~16세기를 거치며 통치체계가 고도화되고 관료 기구가 늘어나고 15~18세기에 걸쳐 중상주의가 부흥함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무 및 공증 문서 작업을 그의 선조들이 감당해냈다.

          

아카키는 훌륭한 전통을 계승한 필경사였다. 필경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뭘까? 누가 뭐래도 정확도다. 원본을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한다. 오자가 있다고 해서 문맥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자의로 바꿔서는 안 된다. 어느 선량한 국장이 그에게 서류 제목을 바꾸고 군데군데 동사를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바꾸는 일을 주었다. 그러나 뼛속까지 필경사의 덕목을 새긴 아카키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카키는 땀을 뻘뻘 흘리다 “못하겠어요, 차라리 뭔가 정서하게 해주세요”라고 절규했다.


있는 그대로만 베껴 쓸 뿐만 아니라 글씨를 단정하게 쓰고 빠르게 쓰는 필경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카키는 필사의 일에 애정을 쏟았다. 아카키는 자신의 일에서 다채롭고 즐거운 세계를 발견했다. 필사 도중 좋아하는 글자를 발견하면 아카키는 즐거움에 얼굴을 씰룩거렸다. 아카키는 항상 자신이 자신의 가지런한 글씨체로 정성껏 쓰인 깔끔한 문장들을 생각했다. 퇴근 후에도 아카키의 필사는 계속되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잉크통을 꺼내들고 필사를 하며 만족한 시간을 보냈다. 아카키는 어떤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필사에 매진했다. 아카키는 ‘내일은 하느님이 어떤 정서할 거리를 보내주실까?’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허망하게 세상을 등진 아카키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필경사들은 망연자실했다. 맨해튼 월 스트리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세 명의 필경사들에게는 심한 심리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터키라 별명 지어진 육십 대 필경사는 못하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흥분하고, 허둥대고, 변덕스럽고, 무모하게 변했다. 정신적 허탈감을 메우기 위해 마신 술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얼굴로 잉크를 엎고, 성을 내며, 소란을 피우는 모습이 연민을 일으킬 정도였다. 니퍼스라 별명 지어진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은 흠잡을 데 없는 신사처럼 행동하다가도 아카키의 죽음만 생각하면 소화불량이 도지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전에는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하며 이를 갈고 씩씩거렸다.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필사를 하는 책상을 수없이 조절해대며 투덜거렸다. 바틀비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필경사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바틀비는 아카키의 뒤를 따르기 위해 ‘안 먹는 편을 택하고’ 아사했다. 

     

〈참고 문헌〉

     

니콜라이 고골 (2011), 『외투』, 이항재 옮김, 문학동네

허먼 멜빌 (2012), 『필경사 바틀비』, 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우베 요쿰 (2017), 『모든 책의 역사』, 박희라 옮김, 마인드큐브

브뤼노 블라셀 (2001), 『책의 역사』, 권명희 옮김, 시공사

움베르토 에코 (2010), 『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이종서 (2018),『사무인간의 모험』, 웨일북

구미정 (2013), 『두 글자로 신학하기』,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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