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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3. 2021

바틀비 이야기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바틀비는 건물주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뉴욕의 중심부인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자기의 이름으로 버젓이 등기한 건물을 갖는 꿈을 꾸었다. 비록 바틀비가 워싱턴의 사서(死書, Dead Letter) 우편물계의 하급 직원이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자신의 봉급을 꾸준히 보탰다. 어느 정도 목돈이 마련되자 바틀비는 월스트리트의 부동산 중개소를 찾았다.


고층의 빌딩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건물들은 바틀비가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나마 큰 빌딩 사이에 끼어 답답하기 그지없고 허름한 3층짜리 건물이 가장 쌌지만 바틀비가 가진 돈의 세 배의 가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바틀비는 은행을 찾아다니며 대출을 알아보았다. 대출 창구를 전전하는 바틀비에게 부동산 사기꾼 한 명이 들러붙었다.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게 해주고 건물주와 흥정을 유리하게 해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을 바틀비는 철석같이 믿고 말았다. 바틀비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과 대출금까지 사기꾼에게 넘겨주었다. 건물 계약하기로 한 날 부동산 사무실에 사기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설마하며 사기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바틀비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져 혼절하고 말았다.


바틀비는 응급실에서 깨어났지만 정신은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바틀비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바틀비에게 워싱턴의 우편물계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서 정신을 놓고 있는 바틀비는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계약하려 했던 건물이 남의 소유라는 것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바틀비는 그 3층짜리 건물에 자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 주위를 얼쩡거리던 바틀비에게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층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를 구한다는 광고였다. 바틀비는 광고지를 들고 곧바로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섰다.


변호사는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바틀비를 채용했다. 변호사의 변호사는 그가 사용하는 사무실의 한 귀퉁이에 바틀비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달리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바틀비는 변호사가 건네는 서류들을 필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각종 부동산 서류를 필사하도록 했다. 바틀비는 부동산 매매계약서, 소유권이전등기들을 필사하며 자신이 갖고자 했던 건물의 매매계약과 소유권 이전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필사를 마쳤을 때 바틀비는 건물주가 되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틀비는 일생의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한껏 고무되어 있는 바틀비를 변호사가 불렀다.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필사한 부동산 서류를 소리 내어 읽어가며 검증하자고 했다. 건물주인 바틀비에게 세입자인 변호사가 서류들을 검증하자는 것이다. 바틀비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제 자기 소유가 된 건물에 관한 서류들을 검증하자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 서류들은 틀림없는 서류들이었다. 혹시라도 그 서류들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의 소유권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틀비에게 들기 시작했다. 바틀비는 변호사에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소”라고 대답했다. 바틀비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변호사는 어이없었다. 시급히 서류를 처리해야 했던 변호사는 다른 필경사를 불러 검증을 마쳤다.


변호사가 건네는 서류들을 필사할수록 바틀비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변호사는 그런 바틀비를 불러 서류 검증을 지시하거나 잔심부름을 시켰지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소”만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변호사가 개인사를 묻거나 서류 검증에 동참하라는 촉구에도 바틀비는 같은 대답으로 일관했다. 변호사가 계속해서 귀찮게 굴자 바틀비는 창문 밖 벽을 응시하며 고민을 하다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바틀비가 필사를 그만두자 변호사는 사무실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건물주가 자기 건물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사무실을 떠나라는 변호사의 말은 바틀비에게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변호사는 얼마간의 돈을 주며 회유했지만 바틀비에게 정작 나가야 할 사람은 세입자인 변호사였다. 바틀비가 요지부동이자 결국 변호사가 손을 들고 말았다. 변호사가 퇴거했다. 사무실에 다른 변호사가 입주했고 바틀비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앞선 변호사처럼 새로 입주한 변호사도 바틀비에게 사무실에서 떠나라고 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변호사는 사람들을 동원해 바틀비를 사무실 밖으로 쫓아내고 말았다. 완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며 바틀비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건물에서 내쫓기는 건물주라니. 바틀비는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에 의해 내몰리고 말았다. 바틀비가 계속해서 사무실로 들어오려고 하자 뾰족한 수가 없었던 변호사는 예전 변호사에게 바틀비를 설득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예전 변호사는 바틀비를 만나 포목상 점원, 바텐더, 수금원, 여행 동반자와 같은 일거리를 제안하며 제 발로 건물에서 떠나라고 어르고 달랬다. 바틀비는 예전 변호사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예전 변호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틀비가 있는 사무실로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은 바틀비에게 법원에 있는 툼스 구치소로 가야 한다고 했다. 바틀비는 구치소로 가면 법원에 자신이 건물에서 쫓겨난 사정을 호소하여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바틀비는 순순히 경찰을 따라 나섰다. 경찰은 바틀비를 구치소에 송치했다. 바틀비는 교도관에게 자신은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탄원할 것이 있다고 했다. 교도관은 실실거릴 뿐 바틀비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틀비는 식사를 거부한 채 법원에서 자신을 부를 때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던 중 예전 변호사가 구치소 취사 담당과 함께 바틀비를 찾아와서 뭘 먹을지 물었다. 바틀비는 ‘식사를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조용한 곳을 찾아 쓸쓸이 발길을 옮겼다. 그 말은 바틀비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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