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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l 25. 2021

벽돌의 성자, 제정구

『신부와 벽돌공』을 읽고

     


사월을 지나 뜨거운 여름

찍고 또 찍어내던 눈물의 벽돌

아, 마침내

반석이 되어 기둥이 되아1)     

「벽돌의 성자 –제정구를 기억하며」* 중에서

     

제정구는 사람들에게 빈민운동가,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1977년 서울시 양평동 철거민을 이끌고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에 복음자리마을을 건설하면서 시흥시와 인연을 맺었다. 1979년에는 서울시 시흥동 철거민과 한독주택을, 1985년에는 서울시 목동 철거민과 목화마을을 시흥군에 건설했다. 1986년, 그는 도시 빈민의 빈곤 퇴치 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일우 신부와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했다. 1988년 6·29선언으로 찾아온 정권 교체의 기회를 놓치고 야권이 분열하자 그는 정치권에 투신했다. 14대(1992년)⋅15대(1996년) 시흥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의원이라는 평을 들으며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였다. 1998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1999년 사망하였다. 2013년 시흥문화원은 애국지사 윤동욱 선생, 교육의 선구자 최긍렬 선생과 함께 그를 시흥의 인물 3인에 선정했다. 


시흥의 인물 3인의 흉상***

   

55세의 아쉬운 나이로 타계하기 2년 전인 1997년 제정구는 자서전 『신부와 벽돌공』(비전21, 1997)****을 펴냈다. 자서전에는 세상에 알려진 그의 업적과 활동뿐 아니라 그가 인간적 고뇌를 극복하고 수신(修身)의 길을 걸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나는 그가 남긴 육성의 기록을 통해 치열한 살면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자기성찰의 발자취를 좇아보고자 한다.



『신부와 벽돌공』에는 제정구가 쥐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양평동 판자촌의 하꼬방 시절 그에게 쥐는 천장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머리에 쥐똥 세례를 주는 그저 해로운 동물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서대문 구치소의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때 변기를 통해 나온 똥 묻은 쥐를 본 그는 생명의 동질감을 각성하고 피폐해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같은 쥐라 하더라도 육체의 눈으로 볼 때와 영혼의 눈으로 볼 때의 의미가 천양지차였다. 그러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그는 더 큰 마음의 눈을 떴다. 복음자리 건설을 마무리하던 시기의 이른 봄 깨진 콘크리트 사이에서 돋아나는 싹을 보고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일이 스승이라는 이치를 문득 알아차렸다.


사람은 각기 마음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편향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판자촌에 뛰어들어 빈민운동을 시작한 제정구에게 주민들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대상이었다. 그는 세상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했다. 양평동 철거가 시작되어 신천리 복음자리마을로 이주를 하면서 그의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주민들은 자기들이 살 마을을 일구는데 사사건건 돈을 요구하고 서로 싸우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집을 짓는 벽돌이 절실한 시기에 벽돌기계공이 사고를 치고 도망갔다. 그가 대신 벽돌 찍는 기계를 붙잡고 악전고투했다. 집이 어느 정도 완성되니 주민들은 서로 들어가겠다고 난리였다. 그의 눈에는 그런 주민들이 자기 잇속을 챙기는 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함께 부대끼며 복음자리 마을을 건설했다.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그는 주민들에게 용해되었고 그때서야 주민들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주민들에 대한 편견이 녹아내리면서 자신이야 말로 그들에게 빚진 자였음을 깨우쳤다. 


선과 악이 대결하면 그 승자는 누구일까? 그 결과는 선이 악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제정구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에 항거했다. 그는 투쟁의 과정에서 맞서 싸우는 세력처럼 자신도 과격하게 변질되는 것을 간파했다. 선이 악을 미워하고 타도하려 하면 선은 그보다 더 악하게 변한다. 성경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라.”2)는 말이 있다. 그는 악에 승리하려면 악 앞에 비폭력으로 의연하게 맞서야 한다고 확신했다. 악에 대한 증오심을 잠재우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악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동의 길을 좇았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주민들에게 철거반의 폭력에 대항하지 말고 평화롭게 일상의 생활을 이어가라고 설파했다. 발상의 전환으로 그는 부도덕하고 폭압적인 정권마저 자신에게 배움을 주는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제정구는 혼탁한 속세를 멀리하고 수도자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는 현실에서 수련하는 길을 택했다. 한 여자의 지아비, 세속의 정치인으로서 욕심을 버리고 충실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삶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한 그는 보왕삼매론을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 마음에 새겼다. 보왕삼매론은 불자들이 정진할 때 맞닥뜨리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열 가지 가르침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보왕삼매론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도록 권장했다. 그는 빈민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터무니없는 모함이나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보왕삼매론의 열 번째 가르침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해명하려고 하지 말라(被抑不求申明)’를 되새겼다. 분하고 답답한 상황을 수긍하고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정구와 정일우 신부3)

    

어려운 길을 갈 때 동반자는 큰 힘이 된다. 제정구 혼자였다면 그 고단한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운동의 동반자이자 평생의 스승인 정일우 신부를 만났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일우 신부(본명 존 데일리)는 예수회 소속으로 1967년부터 서강대에서 강의를 했다. 정일우 신부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학교에서 나와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정일우 신부는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4)는 회의를 느꼈고 한 달 동안 빈민 체험을 위해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는 야학에서 선생을 하고 있었다. 정일우 신부가 그보다 아홉 살 손위였지만 서로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며 허물없이 지냈다. 그와 정일우 신부가 같이 살기위해 터전으로 잡은 판자촌의 허름한 집은 곳곳에 손이 많이 갔다. 집수리 일을 혼자 도맡아 하며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갔다. 일 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정일우 신부에게 자신의 해묵은 불평을 토로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런 일을 네가 도맡아서 하면 뭐가 나쁘냐? 오히려 더 좋은 것 아니냐?”5)라는 정일우 신부의 죽비(竹篦)였다. 그는 자신이 옹졸했고 좀 더 낮아지지 못함에 반성했다. 자신에게 일깨움을 준 정일우 신부를 스승이자 영혼의 아버지로 섬기기 시작했다.


제정구가 자신을 성찰했던 일화들이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한 생각 돌리기만 하면 자신의 삶이 그대로 구도의 길이요 수행의 길이 될 수 있다”6)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과 몸에 배인 습관을 바꾸기 위해 그는 갖은 어려움을 참고 견뎌냈다. 그는 세상을 쉽게 산 사람이 아니었다. 『신부와 벽돌공』을 읽고 글을 쓸 때 마음속에서 그는 나와 함께하였다.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가 남겼던 메시지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내 삶의 소중한 이정표로 다가왔다. 그는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7) 

    

* 「벽돌의 성자 –제정구를 기억하며」는 빈민 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고(故) 제정구 의원을 기리는 시로 김윤환 시인의 향토 시화집 『시흥, 그 염생습지로』에 수록되었다.   

** 막사이사이상(Ramon Magsaysay Award)은 필리핀의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1957년 제정된 국제적 상으로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린다. 해마다 정부봉사, 공공봉사, 국제협조증진, 지역사회지도, 언론문화 등 6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뽑아 상금과 메달을 수여한다.     

*** 시흥시는 시흥시의 근현대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3인의 인물에 대한 흉상 제막식을 2014년 6월 12일 시흥시청 본관 로비에서 개최했다.     

**** 추모1주기(2000.2.9.)를 맞아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이 책과 정일우 신부, 김지하 시인, 박재천 등의 발문을 함께 엮어 『가짐 없는 큰 자유-빈민의 벗, 제정구의 삶』(학고재, 2000년)으로 재출간하였다.      

〈참고 문헌〉

1) 김윤환, 『시흥, 그 염생습지로』, (열린출판사, 2012), p.25

2) 마태복음 5:38-39

3) 《내 친구 정일우》, 김동원 감독, 푸른영상 외, 2017

4) 정일우, 『예수회 신부 정일우 이야기』, (제정구기념사업회, 2017), p.48

5) 제정구, 『신부와 벽돌공』, (비전21, 1997), p.218

6) “위의 책”, p.8

7) 『인물현대사 11회. 빈민 속으로-제정구』, KBS, 200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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