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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0. 2021

옛날 신인(神人)들이 나라를 세울 때에는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八絶 第九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八絶 第九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憶昔神人開國初 옛날 신인들이 나라를 세울 때에는

山從遊獵水從魚 산에서 사냥하고 물에서 고기 잡으니 

身如野鶴無歸着 몸은 두루미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녀

地濶天高未有廬 땅 넓고 하늘 높은데 움막조차 없었다네


石函當日來何處 돌함은 그 시절에 어느 곳에서 떠왔는가

知向郊原播稷黍 들판에 나가 곡식을 피 기장 씨를 뿌릴 줄 알았으니

歲久朱陳成一村 오랜 세월 지나 주씨⋅진씨 한 마을 이루듯

子孫乃爾多如許 자손이 그리하여 이렇게 많구나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제팔절(第八絶)과 제구절(第九絶)은 탐라의 개국 신화를 이야기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처음에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세 사람이 있어 그 땅에 나누어 살고, 그 사는 곳을 도(都)라고 이름 하였다〔初有稱良乙那 高乙那 夫乙那三人 分處其地 名其所居曰都〕.’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 출처: http://www.jejumall.com/

이어서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빌어 그 내력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서술한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처음에는 인물이 없었는데 세 신인(神人)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지금 진산(鎭山)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는 구멍이 있으니, 이곳이 세 신인이 나온 땅이다. 맏이는 양을나이고 다음은 고을나이고 세 번째는 부을나인데, 세 사람이 궁벽한 황무지에 돌아다니며 사냥하여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고기를 먹고 살았다. 하루는 보니, 붉은 진흙으로 봉한 목함(木函)이 동해 가에 떠 이르렀다. 가까이 가서 열어보니, 안에 석함(石函)이 있고 붉은 띠에 자주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따라왔다. 석함을 여니 푸른옷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ㆍ송아지와 오곡의 종자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본국(日本國) 사신인데, 우리 왕이 이 세 딸을 낳고 이르기를, 「서해 가운데 있는 산에, 신의 아들 세 사람이 내려와서 나라를 열려고 하는데 배필이 없다.」 하고, 이에 신에게 명하여, 세 딸을 모시고 왔으니, 배필을 삼아 큰 업을 이루소서.’ 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세 사람이 나이 순서대로 나누어 장가들었다. 샘물 맛이 좋고 땅이 비옥한 곳에 나가서 화살을 쏘아 땅을 정하여,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第一都)라 하고,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第二都)라 하고,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第三都)라 하여,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고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기르니, 날마다 부유하고 번성해졌다.     


주진(朱陳)

주진(朱陳)은 중국의 서주(徐州) 고풍현(古豐縣)에서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姓)이 서로 혼인하면서 화목하게 살았던 촌락 이름인 주진촌(朱陳村)을 말한다.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가 탐라를 건국한 이래 자손이 번성하고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의미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주진촌(朱陳村)」이라는 시로 더욱 유명해졌다. ‘서주의 고풍현에 마을 하나 있는데 주진촌 이라고 하네〔徐州古豊縣 有村曰朱陳〕.’으로 시작해서 ‘한평생 고달프기 이와 같아서 오래도록 주진촌 사람들 부러워했네〔一生苦如此 長羨村中民〕.’로 끝나는 육십팔 구(六十八句)의 시(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세종조와 성종조에 걸쳐 벼슬을 지냈던 이승소(李承召)의 「제주로 부임하는 양 목사 찬을 전송하다〔送濟州梁牧使瓚〕」를 소개하고 있다.

     

乇羅遙在海中央 탁라 섬은 멀리 바다 한복판에 있거니와

野曠山圍作一鄕 들판 넓고 산 에워싸 한 마을이 되었구나

俗似朱陳民易使 풍속 보면 주진 같아 백성 부리기가 쉽고

地如幽冀馬多良 땅을 보면 유기 같아 좋은 말이 많이 나네

桑麻雨足家家喜 뽕과 삼엔 비 흡족해 집마다 다 기뻐하고

橘柚霜濃樹樹香 귤과 유자 서리 짙어 나무마다 향 풍기네

合浦還珠知有日 합포 땅에 구슬 돌아올 날 있음 알겠거니

使君淸白又剛腸 사군께선 청백하고 또한 심지 굳세다네

    

제주에는 모흥고혈과 더불어 건국 신화와 관련된 유적이 몇 군데 있다.

연혼포(延婚浦, 속칭 황로알)는 삼신인(三神人)이 수렵생활(狩獵生活)을 하면서 피의육식(皮衣肉食) 하다가 동해(東海)의 벽랑국(碧浪國)에서 오곡(五穀)의 종자(種子)와 가축(家畜)을 가지고 온 삼공주를 맞이하였던 곳이다.

연혼포가 위치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溫坪里)는 열누니, 예혼 또는 열온이라 부른다. 본래 정의군 좌면이었다. 예전에 고⋅부⋅양 세 신인이 이곳에서 세 신부를 맞아 혼례를 지냈으므로 예혼이라고 했던 것이 변하여 온화하고 태평한 곳이라는 뜻으로 온평리라고 바꾸었다. 그런 연유로 온평 서북쪽에는 혼인지(婚姻池)라는 못이 있다.

한편 성산읍 온평리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삼을나가 사냥을 하다가 ‘화성개’에서 물결에 떠다니는 궤짝을 발견했다. 궤짝을 열자 벽랑국의 세 공주가 나타나자 너무 기뻐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화성개’ 또는 ‘쾌성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때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서 황금빛 노을을 출렁거렸고, 그런 연유로 바닷가를 ‘황루알’이라고 이름 붙였다.

혼인지(婚姻址 또는 婚姻池)는 삼성혈에서 용출(湧出)한 탐라시조(耽羅始祖) 삼신인(三神人)이 동쪽 바닷가에 도래한 함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삼공주(三公主)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로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곳이다. 삼신인이 혼례 후 첫날밤을 지냈다는 신방굴도 함께 남아 있다.

사시장올악(射矢長兀岳)은 한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삼신인(三神人)이 도읍(都邑)을 정하기 위하여 화살을 쏘았던 곳이다. 삼신인(三神人)은 화살이 떨어진 곳을 도읍으로 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삼사석(三射石)은 화살 맞은 돌이라는 의미다. 수렵생활을 하던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碧浪國) 삼공주(三公主)를 맞이한 후 거주지를 정하기 위해 한라산 기슭에서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돌에 꽂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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