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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10. 2021

기억에 남는 선물

앞으로 열흘 남짓이면 추석이다. 마트에 가면 사람들이 막 들어서는 자리에 선물 가판이 설치되고 판매원들의 호객도 심심치 않다. 코로나-19에 세상이 뒤숭숭해도 역시 추석은 추석이다. 한가득 늘어선 선물용 상품들을 돌아보면 마음이 설렌다. 어린 시절에야 떡방앗간과 장(場)에 가서 명절의 분위기를 만끽했지만 다 지난 기억이다. 이제는 마트 가판을 서성거리며 추억을 소환하곤 한다.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는 후배가 있다. 카탈로그에서 골라 주소를 적고 카드 결제를 하면 문 앞까지 배달하는 선물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서 포장까지 정성스럽게 한 선물이다. 이번에는 육포와 약과다. 후배 부인이 전통 요리 강사여서 솜씨가 남다르지만 후배와 아이들까지 함께 만들어서인지 더 귀하게 보인다.

나와 후배의 인연은 이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주임이었고 후배는 신입사원이었다. 그 시절엔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하던 때라 일을 마치고 회사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했다. 경기가 끝나자 다들 뿔뿔이 헤어지고 둘만 남았다. 후배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후배 혼자 기숙사로 돌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 후배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집에 도착하자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아내가 문을 열어 주었다. 후배는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아내에게 살갑게 굴었다. 나와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후배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지금은 나나 후배나 그때의 직장에 있지 않다. 나는 이직하여 경기도에서 터전을 잡았고 후배는 서울로 올라가 사업을 하고 있다. 가끔 후배를 만나 산행이라도 할라치면 후배가 나에게 핀잔하는 투로 그때 일을 이야기한다. “선배님 너무 했어요. 형수님이 배가 무거운데 후배라고 데리고 갔으니 제 입장은 뭐가 됐겠어요.” 그러다 뒤돌아보며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네요. 후배 챙긴다고 선배가 집까지 데려갔으니 말이에요. 슬민이는 잘 컸지요?”라며 빙긋이 웃는다.

선물 카탈로그를 뒤적이다 검붉은 색으로 잘 건조된 곶감 선물 세트를 고른다. 차례상에 올리고 남은 곶감은 후배 부인이 약과나 수정과를 만들 때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면 육포와 약과를 차려놓고 아내와 슬민이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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