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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09. 2021

남쪽은 산을 마주하고, 북쪽은 바다를 등졌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第七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七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南畔是山北畔海 남쪽은 산을 마주하고, 북쪽은 바다를 등졌고

毛興古穴中間在 그 사이 옛날의 모흥혈이 남아 있으나

雲烟埋沒事茫然 구름과 안개에 묻혀 옛일은 아득한데

欲問遺風今幾載 그 풍속이 몇 해나 전해 왔는지 모르겠네


남반시산북반해(南畔是山北畔海)

제주목(濟州牧)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목의 형승(形勝)에 대해 ‘북쪽으로 큰 바다를 베개 베고 남쪽으로 높은 산을 대하였다〔北枕巨海 南對崇嶽〕’라고 하였다. 

    

모흥고혈(毛興古穴)

모흥고혈(毛興古穴)은 모흥혈 또는 삼성혈(三姓穴)이라고도 한다. 모흥고혈은 제주목과 한라산 사이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모흥고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처음에는 인물이 없었는데 세 신인(神人)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지금 진산(鎭山)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는 구멍이 있으니, 이곳이 세 신인이 나온 땅이다. 맏이는 양을나이고 다음은 고을나이고 세 번째는 부을나이다〔厥初無人物 三神人從地涌出 今鎭山北麓有穴曰毛興 是其地也 長曰良乙那 次曰高乙那 三曰夫乙那〕.”

모흥혈은 털이 무성한 구멍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모흥혈에서 세 신인이 나왔다고 했는데 이는 여성인 어머니에게서 세 아들이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모흥고혈은 주위가 수백년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 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이다. 조선(朝鮮) 중종(中宗) 21년(1526) 목사(牧使) 이수동(李壽童)이 처음 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를 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추대제(春·秋大祭)및 건시대제(乾始大祭)를 지내고 있다.

 

운연매몰사망연(雲烟埋沒事茫然) 욕문유풍금기재(欲問遺風今幾載)

유사 이전(有史以前)의 제주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후한서(後漢書)』의 기록을 빌어 삼한시대에 제주도에 주호국(州胡國)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적고 있다.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았으며, 가죽 옷을 입는데 상의(上衣)만 있고 하의(下衣)는 없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화(物貨)를 한(韓)의 국중(國中)에 사고 판다. 『후한서(後漢書)』 살펴보건대, 주호국은 탐라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끝에다가 기록해 둔다. 

“뉴스제주(http://www.newsjeju.net)”에서 제주도의 원주민의 도래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제주도의 원주민의 도래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 간에 주장이 대립되고 있어 아직도 정설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문화기반을 생각할 때 고대의 도래족(渡來族)은 약간의 표착족을 포함한 유만족(流亡族)으로 보고 있다. 그때만 해도 화산활동이 완전히 멎을 때가 아니었으며 또 농업에 적합한 토지 조건도 아니었다. 따라서 씨족연합사회 이후에 볼 수 있는 집단 이동이나 문화이동으로 보기보다는 사연을 지닌 종족들의 피난이나 유망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들은 한반도를 거쳐 온 한족(韓族)을 비롯하여 남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흘러들어 왔다고 생각된다. 특히 서복(徐福)집단이 일부를 포함 진한(秦漢)시대부터 볼 수 있는 중국의 망명인들 가운데 일부도 제주도에 도래한 채 그대로 잔류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들 선착 족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주류를 이룬 것은 근세에 이르러 대거 도래한 한족이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뒤늦게 이동을 해오면서 제주문화는 이들에 의해서 지배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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