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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08. 2021

내려다보면 사람과 자취가 끊어진 곳이나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六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六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俯瞰人間隔世蹤 내려다보면 사람과 자취가 끊어진 곳이나

海中別有瀛洲峯 바다 가운데 별천지인 영주봉이 있으니

秦童漢使枉費力 진나라 동자와 한나라 사자는 헛되이 힘만 쓰고

遺與三韓作附庸 버려진 채 남아있다 삼한의 부용국이 되었다네 


부감인간격세종(俯瞰人間隔世蹤)

제주도가 형성되어 사는 사람이 없었던 시기를 말한다. “제주 화산섬의 형성과정”(https://www.jeju.go.kr/geopark/park/jejuintro/volcanic.htm, 제주도 지질공원)에서 제주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의 화산활동은 신생대 제4기(약 18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에 시작되는데 물이 풍부한 대륙붕 위에서 화산활동이 진행하는 수성화산활동(水性火山活動)이었다.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면 마그마는 급격히 냉각되고 부스러지면, 물은 급격히 기회하고 팽창하여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1백만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그 결과 제주도의 용암대지 밑에는 무수한 수성화산(응회환과 응회구)이 여러 겹으로 겹쳐 쌓이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육지와 바다에 쌓여 “서귀포층”이라는 지층을 만들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수성화산의 일부는 용암대지 위로 돌출해 있으며, 단산, 군산, 용머리, 당산봉 등이 그 예이다.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서귀포층이 쌓여감에 따라 제주도 지역의 고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결국은 빙하기의 평균적인 해수면(현 해수면 下 50~60m 고도) 위로 제주도가 성장하여 간빙기 때도 물에 잠기지 않을 만큼 높은 지형(섬)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수성화산분출은 점차 줄어들고 중기 플라이스토세(약 40~80만 년 전 사이)부터는 용암 분출이 우세하게 일어났다. 이렇게 분출한 용암은 서귀포층 위에 겹겹이 쌓이며 서서히 넓은 용암대지를 만들어 나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원형의 제주도가 서서히 만들어졌으며, 용암분출은 섬의 중심부에 집중되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생인류가 출현하여 구석기 문화를 이루던 수만 년 전에는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이 제주도의 한복판에 만들어지게 되었고 제주도는 거의 완성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구환경이 지금과 거의 동일해지고 현생인류가 신석기 문화를 이루던 현세 중기(수천 년 전)에 마지막 수성화산 분출이 제주도의 동쪽 끝과 서남단에서 일어났으며, 이 분출에 의해 성산일출봉과 송악산이 만들어졌다. 이 화산들이 침식되며 주변 연안에 신양리층과 하모리층과 같은 현세퇴적층이 쌓였고, 그 위에는 선사시대의 사람 발자국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주도의 화산분출은 역사시대까지도 지속되었다.

     

해중별유영주봉(海中別有瀛洲峯)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도를 별천지로 상상하고 한라산을 신선들이 사는 영주봉(瀛洲峯)이라 생각했던 기록을 사마천의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찾을 수 있다.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昭王) 이래 사람을 바다로 파견해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를 찾도록 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신산(三神山)은 발해(渤海) 중에 있어 그 길이 멀지 않았으나, 선인(仙人)들은 배가 도착하는 것을 걱정해 곧 바람을 일으켜 배를 멀리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미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선인들과 장생불사의 약이 모두 거기에 있으며, 산 위의 물체, 새, 짐승 등의 색깔은 모두 흰색이며, 궁전은 모두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지어졌다고 전한다.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 멀리서 바라다보면, 삼신산은 천상의 백운과 같으며, 거기에 도달해 보면 삼신산은 오히려 수면 아래에 처해 있는 듯하다. 배가 막 다다르려고 하면 바람이 배를 밀쳐내어 시종 거기에 도달할 수 없었다. 속세의 제왕 중 그곳을 흠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동한사왕비력(秦童漢使枉費力)

진시황과 한무제가 영생의 선약을 찾아 영주산, 즉 한라산으로 동자동녀(童男童女)와 방사(方士)들을 보냈는데 찾지 못했다. 천하의 권력을 다 쥐어도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진시황과 한무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방사들이 해상의 신선 전설에 관해 말하는 횟수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진시황은 친히 해상으로 나아갔다가 삼신산에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해상으로 나아가 이 삼신산을 찾도록 사람들을 파견했다. 배가 해상에서 돌아와서는 바람을 만나 도달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서, 비록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삼신산을 확실히 보았다고 말했다. 2년째, 진시황은 다시 해상을 순유하며 낭야산(琅邪山)에 도달하고, 항산(恒山)을 거쳐 상당(上黨)으로부터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5년 후, 진시황은 남쪽으로는 상산(湘山)까지 순유하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해상으로 가서 삼신산의 장생불사약을 얻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얻지 못하고 귀경하는 도중에 사구(沙丘)에서 죽었다.

한무제는 방사들을 시켜 봉래산의 신선을 찾도록 했다. 수많은 배들을 내보내 바다에서 선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한무제는 방사들이 봉래산 등의 신선들을 머지않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아뢰자, 기뻐해 어쩌면 신선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알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 해변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며 봉래산의 신선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건장궁(建章宮)의 태액지(太液地)에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 호량(壺梁)이라고 불리는 가짜 선산(仙山)까지 만들었다. 한무제는 봉선을 시작한 후 12년 동안 5악(五嶽), 4독(四瀆)을 일주하며 제사 지냈다. 신선에게 제사 지내며 그를 기다리던 방사들과 봉래산을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던 자들은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공손경과 같이 신선을 기다린 자는 거인의 발자국을 보고 신선을 만날 것이라고 기다렸으나, 결국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유여삼한작부용(遺與三韓作附庸)

부용(附庸) 또는 부용국(附庸國)은 큰 나라에 딸려서 그 지배(支配)를 받는 작은 나라나 지역을 의미하고, 삼한(三韓)은 상고(上古) 시대(時代)에 우리나라 남쪽에 있었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말한다. 제주도에 변변한 나라가 들어서기 전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제주도의 형승(形勝)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바다가 아득하고 멀다. 정이오(鄭以吾)의 서(序)에, “본토에서 탐라를 바라보면 큰 바다 아득하고 먼 가운데에 따로 한 구역이 되어 부용(附庸)과 같다.” 하였다. 〔溟渤渺茫 鄭以吾序 國之望耽羅 宛在溟渤渺茫之中 別爲一區 若附庸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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