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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06. 2021

동녘 모퉁이 동무협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五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五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世傳東角東巫峽 동녘 모퉁이 동무협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絃管遙聞第幾疊 풍악 소리 멀리서 들리니 몇 번이던가 

百里香雲繚繞中 백리의 상서로운 구름 휘감고 도는 중에

仙曹此處應登躡 신선의 무리가 올라온 때라 하네


동무협(東巫峽)

동무협(東巫峽)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동무소협(東巫小峽)이라 이르며 『고기(古記)』의 기록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라산의 일명은 원산(圓山)이니, 곧 바다 가운데 있다는 원교산(圓嶠山)이고 그 동쪽은 동무소협인데 신선이 사는 곳이다. 또 그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東瀛洲)라 한다.’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서는 동무산협(東巫山峽)이라 하였으며 한라산의 동북 협곡을 가리켰다.

    

동무협(東巫峽)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무산현(巫山縣)에 있는 무협(巫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즉 동쪽에 있는 무협이란 뜻이다. 무산현(巫山縣)의 무협(巫峽)에는 신녀(神女) 요희(瑤姬)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요희(瑤姬)는 서왕모(西王母)의 딸이며 천상 요지궁(瑤池宮)에 살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삼원선군(三元仙君)을 따라 도(道)를 배웠으며 일신에 변화가 무궁한 선술(仙術)을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 운화(雲華)부인으로 봉해졌고 전문적으로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들을 가르치는 직책을 맡았다. 요희는 유람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무산(巫山) 상공에 도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수려한 경치에 빨려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12마리의 교룡(蛟龍)이 풍랑을 일으켜 비바람이 몰아치게 되었다. 요희는 인간을 위해 이 악룡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손으로 교룡을 잡고 법술(法術)을 펼치자 번개가 치고 땅과 산이 흔들렸다. 풍파가 평정된 후 12마리의 교룡은 12개의 큰 산으로 변했다. 이 12개의 산은 무협(巫峽)을 가로막았고 장강을 막히게 하여 주위가 넓은 바다처럼 되었다. 나중에 홍수의 우환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세상에서 치수를 담당했던 대우(大禹)가 이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의 산세가 높고 물결이 급해 치수에 큰 어려움을 겪은 대우는 연일 근심에 싸였다. 이때 대우의 정성에 감동한 요희가 시녀를 보내 그에게 법술을 전해주었다. 동시에 6명의 신하를 파견해 선술을 펼쳐 삼협의 물길을 트이게 했으며 홍수가 동해로 빠져나가게 했다. 대우는 신녀 요희의 도움에 감격해 무산에 올라가 직접 만나 치사를 올렸다.  대우가 무산의 정상에 올라가자 그곳에 용(龍), 봉(鳳), 백학(白鶴) 등이 빼곡히 요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치수에 공은 있으나 그래도 천지간 사물의 변화 도리를 알아야 한다.” 요희는 말을 마치자 대우에게 치수하는데 사용하는 누런 비단 책을 주었다. 대우는 천서(天書)를 얻어 감사의 절을 하고는 돌아갔다. 물난리를 다스린 후 요희는 무산에 계속 머물며 신선의 날을 보냈다. 그녀는 매우 높은 산봉우리로 변화해 오랫동안 무산 꼭대기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관망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다. 그녀의 시종들도 각기 봉우리로 화해 조용히 신녀 옆을 지켰다 

   

『고기(古記)』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한국의 고대 역사서이다. 단군신화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기(古記)』는 고려 인종 23년(서기 1145년)에 김부식이 편찬한, 지금까지 전하는 역사서 중 한국 최고(最古)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사료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기(古記)』, 『해동고기(海東古記)』, 『삼한고기(三韓古記)』, 『본국고기(本國古記)』, 『신라고기(新羅古記)』 등 다양한 한국 고유의 기록이 나타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신화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단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조선 정조 때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고기(古記)』는 『단군고기(檀君古記)』의 약칭으로서 단군의 사적을 기록한 문헌으로 보았으며,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 인용한 『단군본기(檀君本紀)』와 같은 책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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