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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05. 2021

푸른 솔과 초록 대와 자단은 향기롭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四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四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蒼松綠竹紫檀香 푸른 솔과 초록 대와 자단은 향기롭고

赤栗乳柑橘柚黃 적율과 유감와 귤과 유자는 노랗게 익어가고

白雪丈餘紅綿樣 흰 눈이 한길 남짓 쌓여도 붉은 솜 같으니

四時留得靑春光 사시사철 푸른 봄빛이 지니고 있네


창송(蒼松)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소나무는 나무껍질이 붉은색을 띠는 적송을 말하지만 제주에서는 곰솔을 소나무로 부르는데 더 익숙하다. 곰솔이 저지대에 분포하는 데 비해 적송은 해발 600m 이상 고지대에 분포한다.

곰솔은 소나뭇과로 잎이 소나무 잎보다 억세고,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 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으로도 부르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하여 바닷가의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이나 방조림(防潮林)으로 많이 심는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쁠 때는 이 곰솔이 있는 산천단(山川壇)에서 제사를 올렸다 한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있는 천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올 때는 큰 나무에서 잠시 쉬어 내려온다고 믿어 왔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곰솔도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에 있는 나무라고 믿어 신성시 여겨 잘 보호되었다.     

록죽(綠竹)

제주도에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는 맹종죽, 왕대군락을 만나기 어렵지만, 산죽이라는 이대는 제주 마을 인근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조릿대 또한 대나무의 일종으로 외국에서는 난쟁이 대나무로 부르는데 제주조릿대는 제주도에만 분포한다. 제주조릿대는 한라산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대표적 수종이다.

과거 말(馬) 방목 역사를 보면 목초의 성장이 왕성했던 봄과 초여름 사이에는 방목이 원만했지만 겨울철에는 목초성장이 중단돼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대안’으로 상록성의 제주조릿대를 말의 사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제주조릿대의 잎은 겨울철에도 푸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조릿대의 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속적으로 잎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묵은 잎은 떨어지고 새로운 잎이 생성되어 마치 잎이 지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단(紫檀)

자단목은 붉은색이 감돌면서 아주 단단한 나무이다. 톱으로 썰어도 쉽게 썰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고대부터 붉은빛과 나뭇결이 아름답고 내구성이 강해서, 예전부터 최고의 가구재로 사용되었다. 이 자단목의 용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태워서 연기를 맡는 분향료(焚香料)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고급 공예품이나 목가구에 사용된다. 자단은 붉은색을 띠므로 귀신을 쫓는다고 여겨졌고, 단단하므로 가구를 만들면 아주 오래갔다. 그래서 고려나 조선에서도 자단으로 만든 목가구는 왕실이나 상류층이 애호하던 명품가구였다. 소위 ‘화류장(樺榴欌)’이 이것이다. 자단으로 만든 화류장은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자단의 심재인 자단향(紫檀香)은 약재로 사용되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자단향을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매우며 독이 없다 〔性溫 味辛 無毒〕 ’고 하였으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악독⋅풍독⋅곽란으로 명치가 아픈 것과 중악⋅귀기(鬼氣)에 주로 쓴다. 자진단(紫眞檀)이라고도 한다 〔主惡毒, 風毒, 霍亂, 心腹痛, 中惡, 鬼氣. 一名紫眞檀〕’고 하였다.

남구명(南九明)의 『우암선생문집(寓庵先生文集)』에는 조정에서 자단향을 진상하라는 재촉을 꼬집는 시(詩)가 남아있다.     

名區珍木傲風霜 仙界의 진귀한 나무 모진 풍상 견디니

納錫年年犯大洋 공납 명령으로 해마다 거친 바다 건너네

半夜別關星火急 한밤에 특별한 관문 성화처럼 급하니 

尙方催促紫檀香 상방(尙方)에서 자단향(紫檀香) 진상하라 독촉하네     

적률유감귤유황(赤栗乳柑橘柚黃)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제주도에서 나는 주요 과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감(柑)에는 황감(黃柑)⋅유감(乳柑) 등 몇몇 종류가 있다. 귤(橘)에는 금귤(金橘)⋅산귤(山橘)⋅동정귤(洞庭橘)⋅왜귤(倭橘)⋅청귤(靑橘)의 다섯 종류가 있는데 청귤은 열매를 맺어 봄이 되어서야 익고 때가 지나면 다시 말랐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 익는다. 유자[柚]⋅비자(榧子)⋅치자(梔子)⋅적률(赤栗)⋅가시율(加時栗) 두어 종류가 있다. 과실이 과원(果園)에서 나오는데 과원은 모두 담을 쌓았다. 모두 열아홉 곳인데, 대정이 여섯 곳이고 정의가 다섯 곳이다.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밤〔栗〕을 재배하지 않았으므로 적률(赤栗)은 구실잣밤나무 열매를, 가시율(加時栗)은 가시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백설장여홍면양(白雪丈餘紅綿樣)

수북이 쌓인 눈 속에서 피어 있는 동백꽃을 붉은 솜에 비유하는 싯구이다.

동백(冬柏)은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겨울 홀로 꽃망울을 터뜨린다. 혹한의 삭풍에도, 소복이 쌓인 눈 속에서도 핏빛처럼 붉은 꽃을 피워 이목을 집중시킨다. 강렬한 색깔과 달리 향기는 거의 없다. 곤충을 보기 힘든 추운 계절 피기 때문에 향기 대신 빛깔로 동박새를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백이 가장 먼저 피는 곳은 제주도다. 흔히 '애기동백'으로 불리는 외래종이 11월 말부터, 토종동백은 1월 즈음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3월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곳곳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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