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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22. 2021

바다가 토해 낸 서산에는 뛰어난 흥취가 배어 있고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第二十一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十一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海吐瑞山供逸趣 바다가 토해 낸 서산(瑞山)에는 뛰어난 흥취가 배어 있고

龍蟠牛島呈祥霧 용이 웅크린 듯한 우도에는 상서로운 안개 드리웠네

山川喜我泛槎來 산천은 내가 탄 배가 오는 것을 반기니

我亦有情堪指顧 나 또한 정겹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돌아보네


서산(瑞山)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서산(瑞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려 목종(穆宗) 5년 6월에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는데 산에 네 구멍이 뚫리고 용암이 솟아 나와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왓돌〔瓦石〕이 되었다. 10년에 상서로운 산〔瑞山〕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어 가서 보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우레 소리를 내며 땅이 움직였는데, 일곱 주야 만에 비로소 개였다. 산의 높이가 백여 길이나 되고 주위가 40여 리나 되는데, 초목이 없고 연기가 그 위에 덮이고 바라보기에 석류황(石硫黃) 연기 같아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공지(拱之)가 친히 산밑에 이르러 그 모양을 그려 바쳤다.” 하니, 지금 대정현(大靜縣)에 속한다.

‘서산(瑞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역사서에 분화된 화산의 위치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후 서산(瑞山)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오고 있다. 김상헌의 ‘남사록’과 같은 문헌과 ‘탐라지도’,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의 고지도에는 서산을 비양도로 추정했다. 이외에도 서산을 가파도, 군산, 우도로 추정했던 사례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송악산이나 형제섬을 서산(瑞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우도(牛島)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우도(牛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둘레가 백 리인데 주 동쪽 정의(旌義) 경계에 있다. 사람과 말〔馬〕이 떠들면 풍우가 일어난다. 섬의 서남쪽에 구멍이 있는데 작은 배 한 척을 용납할 만하고, 조금 나아가면 배 오륙 척을 감출 만하다. 그 위에는 큰 돌이 집 같은데, 마치 햇빛이 떠서 비치고 별들이 찬연하게 벌여 있는 것 같고 기운이 심히 차고 냉하여 머리털이 쭈뼛한다. 세속에서는 부르기를 신룡(神龍)이 있는 곳이라 부르는데, 7, 8월 사이에는 고기잡이 배가 가지 못한다. 가면 크게 바람이 일어나고 우레가 치고 비가 쏟아져서 나무를 쓰러뜨리고 곡식을 손상시킨다. 그 위에는 닥나무가 많다.     


범사(泛槎)

범사(泛槎)는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이 탔다는 뗏목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최부가 탄 배를 의미한다.

위(魏), 서진(西晉)의 인물인 장화(張華)가 지은 『박물지(博物志)』에는 범사(泛槎)에 대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 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서역(西域)에 나갔던 길에 뗏목[槎]을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갔다. 어떤 성시(城市)에 이르렀는데 한 여인은 방 안에서 베를 짜고, 한 남자는 소를 끌고 은하(銀河)의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그 여인이 지기석(支機石) 하나를 장건에게 주면서 “성도(成都)의 엄군평(嚴君平)에게 가서 물어보라.” 하였다. 장건이 돌아와서 엄군평을 찾아가 지기석을 보이자, 엄군평이 말하기를 “이것은 직녀(織女)의 지기석이다. 아무 연월일(年月日)에 객성(客星)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범했는데, 지금 헤아려보니 그때가 바로 이 사람이 은하에 당도한 때였도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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