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티콘 Sep 25. 2021

가는 결실의 달 헛되이 보내기 아까워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十七絶

탐라시삼십오절(耽羅詩三十五絶) 第二十七絶 


최부(崔溥) 지음, 고광문 역주(譯註)


嫌將歲月虛抛擲 가는 결실의 달 헛되이 보내기 아까워

照里鞦韆傳自昔 조리놀이와 그네타기 옛날부터 전해왔네

僧刹了無香火時 절에서 향불을 피울 때가 아닌데

騈闐簫鼓燃燈夕 연등제 저녁에 북소리 퉁소 소리 요란하네


세월(歲月)

세월(歲月)은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결실의 달’로 옮겼다. 제주에서 조리희(照里戲)와 그네뛰기가 음력 8월 15일에 열렸고 세(歲)에는 ‘결실(結實)’이라는 의미도 있음을 고려하였다. 

    

조리추천(照里鞦韆)

조리추천(照里鞦韆)은 조리희(照里戲)와 그네뛰기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제주의 조리희(照里戲)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왼편 오른편으로 나누어 큰 동아줄의 두 끝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에 끊어져서 두 편이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의 놀이라고 한다. 이날에 또 그네 뛰는 것과 닭 잡는 놀이를 한다. 〔照里戲 每歲八月十五日 男女共聚歌舞 分作左右隊 曳大索兩端以決勝負 索若中絶 兩隊仆地 則觀者大笑 以爲照里之戲 是日又作鞦韆及捕鷄之戲〕

     

승찰요무향화시(僧刹了無香火時)

승찰요무향화시(僧刹了無香火時)는 ‘절에서 향불을 피울 때가 아닌데’라는 말인데 이는 뒤에 나오는 연등(燃燈)과 연관 지어야 의미가 명확해진다. 불가(佛家)의 연등(燃燈) 즉 연등제(燃燈祭)는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 8일에 열리는데 제주의 연등제(練燈祭)는 음력 2월에 열림을 빗대어 말하였다. 


연등(燃燈)

연등(燃燈)은 영등제(迎燈祭) 또는 영등굿이라고도 불리는 연등제(練燈祭)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제주의 연등제(練燈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음사(淫祀)를 숭상한다.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고 낮은 언덕, 나무와 돌에 모두 신의 제사를 베푼다.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남녀 무당이 신의 기(旗)를 함께 받들고 경을 읽고 귀신 쫓는 놀이를 하는데 징과 북이 앞에서 인도하며 동네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다투어 재물과 곡식을 내어 제사한다. 또 2월 초하룻날 귀덕(歸德) 금녕(金寧)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 열둘을 세워 신을 맞아 제사한다. 애월포(涯月浦)에 사는 자는 나무 등걸 형상이 말머리 같은 것을 구해서 채색 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그만두는데, 그것을 연등(燃燈)이라고 한다. 이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한다. 

    

『신정일의 신택리지』에는 영등제(迎燈祭)와 영등신(迎燈神)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있는 영등당은 한수 동쪽에 있는 영등신을 모신 신당이다. 예로부터 영등신이 정월 그믐달에 소섬(구좌면)으로 들어와서 하룻밤을 묵고, 2월 초하루에 산지포(제주시 건입동)로 들어온 뒤 섬을 일주하고 묘일(卯日)이나 축일(丑日)에 돌아간다고 한다.

그동안에 만일 농사를 지으면 흉작이 되고, 빨래를 하면 구더기가 생기며 조개나 소라를 잡으면 속이 비어 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든 일손을 놓고 집집마다 쌀을 거두어 정성으로 떡⋅밥⋅과일⋅생선⋅제주를 장만하여 제사를 지냈다. 소지를 올리고 굿을 매우 성대하게 한다. 끝나는 날에는 약 1자 길이 안에 모든 제물을 골고루 덜어 넣어서 정성껏 바다로 보냈다. (중략)

예전에 한 영등대왕이 용왕 나라에 갔다. 하루는 한수리(한림읍)의 고깃배가 폭풍을 만나서 애꾸눈들이 사는 나라 쪽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큰 바위에 나가 앉았다. 그리고 그 배를 끌어다 바위 뒤에 숨겼다. 애꾸눈들이 개를 몰고 뒤쫓아 와서 “방금 좋은 반찬이 이쪽으로 왔는데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영등대왕이 못 보았다고 짐짓 속여 돌려보내고, 어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단단히 부탁했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려거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가라.” 어부들은 그 말대로 관세음보살을 외면서 배를 저었다. 어느덧 고향에 가까웠으므로 어부들은 기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가 다시 애꾸눈이 나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영등대왕이 나타나 꾸짖으면서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며 가야 무사히 갈 수 있다”고 하므로 그 말을 따르자 풍랑이 잦아졌다. 덕분에 어부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잔뜩 화가 난 애꾸눈이 무리는 영등대왕을 세 토막을 내어 바다에 던졌다. 그 머리는 소섬(구좌읍), 사지는 한수리, 몸은 성산(성산읍)에 떠올랐다고 한다. 그 뒤부터 매월 해마다 2월 초순에 영등대왕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들이 농사지을 줄 알아 배불리 먹고 자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