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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Sep 27. 2021

달빛에 물들고 눈을 덮은 선운사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온 세상을 비추고 도솔산 선운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새벽 예불에 맞춰 알람이 울리자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하얀 눈은 내 몸을 반기는 듯이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 아침 공양을 마치고나서 나는 일찌감치 도솔암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산길에 내가 처음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마냥 설레기도 하면서도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이내 서서히 사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산짐승들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차오름을 즐기면서 완만한 도솔암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습니다. 마침내 건너편 낙조대까지 기어이 오르고 말았습니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고 마치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 듯한 도솔암 내원궁의 풍경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흐릿한 서해 바다는 내 안의 많은 감상을 자극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선운사를 향해 돌아오는 있노라니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점점 더 눈에 많이 띠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옆 도솔천(兜率川)에 눈이 떨어지는데 맑은 냇물에 눈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냇물에서 사라진 눈은 아마도 도솔천(兜率天)에 내리는 눈으로 환생하지 않았을까요?

     

도솔천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주문을 외어 보았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니 가니 건너가니 건너편에 닿으니 깨달음이 있네. 아!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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