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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Oct 09. 2021

‘손’ 이야기

조물주가 태초에 세상을 만들었을 때 인간에게 우수한 머리와 유창한 입을 주어 만물의 영장으로 삼고자 했다. 그때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네발로 걷던 시기였다. 조물주는 자기의 창조물들에 자못 만족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자기의 심혈을 기울여 빚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머리와 입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어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도록 하였는데 어찌 이 모양이냐?”

머리와 입이 대답했다.

“조물주님께서는 저희를 인간에게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모든 생물의 우두머리로 세우는 일에 저희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생각하기로 따지면 인간이 온종일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나무늘보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말하기로 치면 엄청난 음파를 내지르는 박쥐와 물속에서도 대화를 나누는 고래에게는 어림도 없지요. 그러니 인간은 멍하니 있다가 심심하면 떠들며 몰려다닙니다. 그러다가 배고프면 먹고 자기만 하는걸요. 그건 다른 동물들도 하는 겁니다.”

조물주가 머리와 입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느냐?”

머리와 입이 대답했다.

“조물주님처럼 인간의 앞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손으로 바꿔주십시오. 그럼 손은 저희의 명령에 따라 많은 일을 해낼 겁니다.”

조물주가 말했다.

“손이 너희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바꾸겠느냐? 다시 생각해 보거라.”

머리와 입이 비웃으며 대답했다.

“생각도 말도 못하는 손이 저희를 어찌하겠습니까?”

조물주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희가 그러자고 했으니 결코 되돌릴 수 없느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조물주의 경고가 허튼소리가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     

머리가 생각을 멈추고 쉬려고 하자 손이 반대했다. 손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쥐어뜯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때로는 찬물을 머리에 들이부었다. 머리는 손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입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입이 말을 많이 해 시끄럽다 싶으면 손이 입을 막아 버렸다. 어떤 때는 귀를 막아 버려 다른 입이 보내는 말을 듣지 못하게 했다. 입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손이 날아들었다. 입도 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손은 머리와 입을 대신할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문자’였다. 문자가 완성되었을 때 머리와 입은 깜짝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문자는 머리만 할 수 있었던 기억을 대체했다. 오히려 머리보다 오랫동안 정확하게 기억했다. 인간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붙었을 때 인간들은 더 이상 머리의 기억을 찾지 않고 손으로 기록한 석판이나 종이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머리조차 자신의 기억 대신 손이 만든 문자를 더 신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또 문자는 입의 전유물이었던 말을 대신했다. 머리가 손이 만든 문자를 더 믿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간은 입으로 말하기보다 문자로 의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할 일이 별로 없어진 입은 음식의 맛을 감별하는 데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 때까지 손은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손은 쉬고 싶었다. 다른 동물들을 길들여 일을 덜려고 했지만 바쁜 건 여전했다. 동물들은 손의 지시가 없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발명가’라고 불린 인간들의 손이 나섰다. 그 손들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발명가들의 손에 의해 한 번만 명령을 내리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기계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기계 덕분이 여유가 생긴 손은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남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이번엔 로댕이라는 조각가의 손이 나섰다. 로댕의 손이 온 힘을 다하여 완성한 작품이 ‘대성당’, ‘신의 손’,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은 인간에게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지 않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동상을 만들었다면 작품은 ‘절규(Skrik)’라 이름 지워졌을 터이니 말이다.


문학가들의 손도 그냥 있지 않았다.

동화작가 맥스 루케이도의 손은 『오른손 왼손』를 지어 어린이의 손에 얼마나 많은 능력이 있는지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의 고사리손은 자신의 일을 척척 해낼 뿐 아니라 다른 이를 돕기까지 했다. 꼬마 아가씨의 두 손이 기도하며 모든 손들의 소원을 빌었다. “고마워요, 하나님, 두 손을 주셔서, 다음에도 내 손을 꼭 써주세요.”

김훈의 손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하면서도 ‘라면을 끓이며’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이렇게 선언했다. “손의 꿈은 무기와 악기와 연장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하는 일이다. 손의 꿈은 세계를 귀순시켜서 인간의 안쪽으로 편입시키는 일이다.”  

   

손은 자신을 앞발이라는 굴레에서 해방시켜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준 조물주를 위해 신전을 세웠다. 신전에는 조물주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갖가지 조형물을 만들었다. 흡족하게 지켜보던 조물주는 두 손에게 말했다.

“너희로 인해 인간이 드디어 만물의 영장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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