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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Oct 13. 2021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읽고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유진이라는 청년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하기에 이르는 성장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류의 2~3퍼센트 가량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그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라 부른다는 ‘순수 악인’이다. 비둘기의 세상에 태어난 매이자 피식자로 살아가도록 학습 받고 억압받으며 성장한 포식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의 기원》은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작가는 유진을 ‘사이코패스’, ‘순수 악인’, ‘프레데터’로, 유진의 성장 과정을 ‘악의 탄생기’로 지칭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이유가 ‘사람의 본성에 존재하는 악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함’2)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작가의 말을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유진이 그러한 존재인지, 작가가 악에 대처하고 있는지. ‘사이코패스’와 ‘뇌 과학’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소설 속에 그려진 유진의 상황과 다른 책들의 내용을 연결하여 유추해 본 결과 나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을 시작하겠다. 

    

소설은 유진이 발작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세례를 받는 도중에 유진은 쓰러지고 만다.  

   

나도 고개를 들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은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살이 타고, 눈이 타는 기분이었다. 시야에선 부연 흙먼지가 소용돌이치고 사물들은 이상한 형태로 바뀌었다. 십자고상이 거꾸로 서고, 제단이 이마 위로 떠오르고,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이 뼈만 남은 사람의 손가락으로 보였다. 나는 발부리가 천천히 위로 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세상이 왈칵 뒤집혔다. 내 몸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3)

     

유진은 ‘뇌전증’으로 의심되는 질환을 가진 장애인이다. 뇌전증은 뇌의 손상이나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 원인이라 한다. 유진은 자신의 발작을 ‘벌떡증’, ‘개병’, ‘지랄’이라고 부른다.4) 유진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발작을 일으킨다. 유진의 범죄는 발작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유진의 살인을 악함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질환에 대한 대처가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유진은 자신의 질환을 제어할 목적으로 ‘리모트’라는 약을 복용한다

.      

갑자기 투약을 중단한 장기 복용환자에게서 측두엽 발작이 보고된 바 있다.     

나는 어느 쪽에 해당되는 것일까. 약으로 억제됐던 발작이 투약 중단으로 재발현한 것일까. 투약 중단의 부작용으로 발작이 일어난 것일까.5)

     


유진은 자신이 복용했던 약이 자신의 발작과 관계가 있는지 의심한다. 작가는 이 약이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리모트’와 같은 약물과 관련된 사건들이 보고되고 있다. 우울증 완화제 ‘팍실Paxil’,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일종인 ‘프로잭Prozac’과 ‘플럭틴Fluctin’,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리탈린Ritalin’을 복용한 사람들 중 일부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거나 난폭하게 흉기를 휘두르거나 자살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6) 이 약물들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 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흉측한 범죄를 저지른다. 유진의 살인이 ‘리모트’의 부작용에 의한 발작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약물 부작용에 의한 의료사고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애시울에서 발생한 형과 아버지의 사망 사건 후에 유진은 사이코패스 검사를 받는다. 혜원은 유진의 어머니에게 검사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보한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7)  

   

사이코패스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이 확진할 수 있는 병명이 아니라고 한다. 굳이 비슷한 의료진단 명칭을 붙이자면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딱 맞는 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8) 어린이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조사하는 기준표로 ‘사이코패시 체크 리스트 : 어린이 청소년 버전’PLC:YV이 있다고 한다. 물론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할 수 있는 성인의 성격과 행동 특성이 어린이가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에 대해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어린이가 모두 성인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도 아니다.9) 의료계에서도 사이코패스의 진단과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기다. 검사 결과 유진에게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강하게 나왔다 하더라도 정신과 의사인 혜원이 유진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내리고 등급까지 붙였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 혜원이 유진의 사이코패스 진단의 근거로 대는 것 중의 하나가 편도체의 손상이다.

      

혜원은 그것이 무엇일지 몰라 겁이 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아형 품행장애로 추측하고 검사를 시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토론 결과에 따르면, 유진의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10)

     

살인자의 뇌를 PET나 fMRI와 같은 영상 기법을 사용하여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뇌를 스캔한 결과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의 손상이 보고되었다.11) 이 결과를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의 공통적인 현상일 뿐이다. 편도체가 손상된 모든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되지는 않는다.

      

앞의 예들에서 보았듯이 설령 유진이 받은 사이코패스의 진단이 유효하다 하더라도 바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세 가지 요소로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을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를 꼽았다.12) 그렇다면 유진은 인간의 본성에 존재하는 악에 의해 살인자가 된 것이 아니다. 유진의 존재는 악에 대한 대처이기 보다 작가가 정신 질환과 약물, 뇌과학, 사이코패스에 대한 지식을 혼합하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범행을 해진에게 덮어씌우고 도주하는 유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이해가 간다. 그렇더라도 유진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작가만의 것이다. 작가가 그것을 독자들에게 주지할 권리는 없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작가는 거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 382~383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2) 383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3) 11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4) 17~18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5) 229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6) 171~173쪽, 『범인은 바로 뇌다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극렬 테러리스트를 위한 뇌과학의 변론』, 한스 J. 마르코비치⋅베르너 지퍼 지음, 김현정 옮김, 알마, 2011

7) 259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8) 18~23쪽, 『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 퀘스트, 2015

9) 113쪽, 『착한 사람들,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가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와이즈베리, 2017

10) 259쪽,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11) 63~80쪽, 18~23쪽, 『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 퀘스트, 2015

12) 128쪽, 『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 퀘스트, 2015

     

※ 참고 문헌

『종의 기원』, 정유정, 은행나무, 2016

『범인은 바로 뇌다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극렬 테러리스트를 위한 뇌과학의 변론』, 한스 J. 마르코비치⋅베르너 지퍼 지음, 김현정 옮김, 알마, 2011

『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 퀘스트, 2015

『착한 사람들,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밝히는 인간 본성의 비밀』, 애비가일 마시 지음, 박선령 옮김, 와이즈베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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