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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Oct 29. 2021

가을은 말라가는 내음의 계절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사람들은 가을을 어떻게 기억할까? 높다란 하늘, 예쁜 코스모스, 붉게 물든 단풍과 같이 시각적인 요소가 주를 이룬다. 나에게도 가을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가을에 대해 묻는다면 내음의 계절이라고 하겠다. 무슨 내음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말라가는 내음’라고 하겠다. 가을은 말라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무청을 짚으로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아 말라가는 시래기 내음.

호박을 잘게 잘라 실에 꿰어 마루 위 대들보에 대롱대롱 말라가는 호박고지 내음.

콩을 삶아 찧어서 네모나게 만들어 짚으로 묶어 대청마루에 묵직하게 말라가는 메주 내음.

마당의 멍석에서 검붉게 말라가는 대추 내음.

채로 썬 무가 말라가는 무말랭이 내음.

초록빛이 시나브로 갈변하며 말라가는 토란대 내음.

타작마당에서 이리저리 튀던 콩들이 바싹 말라가는 내음.

돗자리에 넓게 펴 널어 말라가는 담갈색 참깨 내음과 진갈색 들깨 내음.

추수를 마친 논바닥에서 말라가는 짚 내음 

농로를 따라 길게 늘어놓은 모기장에서 바스락 말라가는 나락 내음.

푸른 잎을 떼어낸 자색의 줄기가 갈색으로 말라가는 고구마 잎줄기 내음.

통통한 선홍색 열매가 따가운 햇살을 받아 말라가는 암홍색 고추 내음.

진보라 껍질 아래 연노랑 속살이 자글자글 말라가는 가지 내음.

거적에 널어 이리저리 저을 때마다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말라가는 땅콩 내음.

감을 깎아 실에 꿰어 시렁에서 늘어뜰여 매달아 말라가는 곶감 내음.


찬바람이 불어오면 들판은 휑하고 낙엽 진 나무는 쓸쓸하다. 하지만 말라가는 내음이 있기에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 마음엔 든든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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