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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Nov 02. 2021

쓰레기 종량제봉투에 대한 단상

퇴근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샀다. 점원에게 봉투 규격을 물어보니 오십 리터, 이십 리터, 십 리터가 있다고 했다. 자잘한 쓰레기가 대부분이었고 집에 쓰레기를 오래 놔두기가 좀 께름칙해서 십 리터 봉투를 샀다. 스무 장에 칠천 원이라 했다. 돈을 내고 한 묶음의 봉투를 사들고 가다 쓰레기 버리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쓰레기가 가득 찬 종량제봉투 무더기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백 리터의 쓰레기를 칠천 원에 버릴 권리가 있을까?’     


나의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수많은 쓰레기들이 나로 인해 생겨난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쓰레기가 있을까? 곰곰이 찾아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쓰레기는 나의 생존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생활의 편리함 때문이거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구했다가 무심코 종량제봉투에 쑤셔 넣는다. 그렇게 이백 리터의 물건들을 거리낌 없이 버리는 가격이 칠천 원이라니!     

종량제봉투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소각되면 이산화탄소와 유해 가스가 대기 중으로 분출된다. 매립되면 썩거나 분해되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내가 마시는 공기와 살아가는 땅과 마시는 물이 오염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내 아이와 아이의 아이 ……. 손쉽게 버린 대가로 돌아오는 악영향은 결코 칠천 원은 고사하고 어떤 비용을 들여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더니 종량제봉투 더미가 치워지고 없었다. 새벽에 청소차가 다 싣고 갔나 보다. 그 빈자리에 종량제봉투를 툭 던지고 유유히 발길을 옮긴다. 간밤의 종량제봉투에 대한 나의 상념도 같이 버려지고 말았다. 스무 장에 칠천 원하는 십 리터 종량제봉투에 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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