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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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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Aug 25. 2021

그렇게 하세요

썩는 것은 내 몸

썩는 것 또한 내 몸

늘 고여 있는 것 역시 내 몸일 뿐인데

등에 난 종기는 내 영혼이며

나와 함께 하며

말을 나누며

이 빌어먹을 세계와 함께

나와 같이 자라나고

찢어지지 않는 견고함으로 하나가 되니

바람은 번개와 같고

오는 인연은 낙엽과 같다

오늘은 무엇이든 참 크기도 하다


썩는 것은 내 몸

썩는 것 또한 내 몸

그것은 역시나 정해진 것

너무나 정해져 있음으로 인해 흐르는 것

심장 아래로 꿀럭이는 것

혀 아래에 감춰둔 것

그것은 너를 죽일 수 있는 무심함

연못 위로 던지는 돌이니 너의

긋다만 손목에 무딘 과도는 일종의 쇼, 박수가 터지고

찌르는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코믹 위대한 연기

이는 모두 있는 그대로였으니, 허나

웃을 사람은 모두 웃었고

갈 사람은 애초에 오지도 않았으니

시간아, 확률은 농익어가고

너는 흔들리는 싸구려 책상과 같다

가만히, 참 조금씩 크게도 휘청이는구나


썩는 것은 내 몸, 역시 내 몸

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은 내 가짐이니

이곳저곳 일련번호에 빨간딱지가 붙어있고

가만히 있길 바라는 마음 역시 내 마음이니

멀쩡하다 못해 멀쩡치 못한 것이 또한 나의 마음이니

사형수처럼, 도야지 불도장처럼

폐기되는 것이 수순이니 여기 가지고 가라

이제 이 인간에게 필요한 서류는 모두 언도되었으니

허공으로부터 칼이 내리고

곧 세계는 무너져버릴 것이고

너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너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맞춰 잠에 들 것이다

제때에 떠진 눈이야 말로 멸망의 증거가 분명할지니


이 밤 여기 차라리 인간인 것이 있었다면

도망칠 곳 없는 쥐들은 노래를 부르고

갈 곳이 정해진 나는 노래로 된 벽을 두드리며

기쁘게, 시간은 저절로 흘러갔을 테지만

이제 시작된 무너짐은 안정적으로 되었고

그곳에 놓여있는 것은 그저 만족스러울 수밖에는

여기 한때 인간인 것이 있었으나

이제 다 망하고 말았으니

썩지도 못하는 덩어리들은 세라믹으로 덮인 시계처럼

상처 받기를 거부하는 자는 골동품으로 되어

시계는 시간과 함께 죽은 자의 품 안에서

그 끝까지 시간을 죽일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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