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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Jun 17. 2019

내가 사는 세상

정치와 환경

정치는 피부에 와 닿는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늘 현실의 밑바닥에 정치가 가라앉는단말이다. 이명박의 4대강과, 박근혜의 가리왕산으로 대표되는 환경파괴는 단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리대 발암물질 사태, 올 한 해 극심했던 황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줄을 끝없이 이을 수도 있다———그리고 그 옆에, 인간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겨 일어난 모든 사고들도 끝없이 이을 수 있다———이 둘은 엮이어 있다.  엮어, 우리를 가둔다. 환경파괴와 인간소외는 감옥 창살과 같다. 빠져나갈 데 없이 투명한 자본주의의 시선이 그 위로 내려쬔다.

정권은 ‘치적사업’이 필요하고, 그 사업에는 이권이 개입된다. 돈이 곧 필요를 창출한다. 그 필요에 따라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개발’한다. 무엇은 환경이고, 무엇은 필요이다. 무엇이든 상관없는 것이 절대적 권력의 불가결성이다.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정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치산치수’를 말했지만, 그 어떤 정권보다도 환경파괴 일변도의 정책개발을 한다. 박정희 정부가 시행한 간척사업과 임해공업단지가 있다. 이 과정에서 4대강 이상의 환경파괴가 일어났다고 평가받는다. 이어서 권력을 잡은 군부독재정권 또한 그러했다. ‘무자비하게’ 개발했다. 그리고 그들은 무자비했다.

지금 무늬만 보수인 세력들이 기대는 것은 비단 박정희의 ‘경제신화’만이 아니다. 박정희가 성공시켰던 산림녹화에서부터 이 ‘치산치수’ 신화는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릇된 신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재의 ‘치적 사업’으로 알려진 4대강과 가리왕산 등의 환경파괴 정책을 다시금 조사해야 한다. 여기서 조사란 환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는 개발이 가져올 직•간접적 이익과 잠재적 악영향으로 나누어 언론이 집중해왔는데, 경제적 이익과는 별도로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업이 시행되었는지 또한, 그 펜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피부에 와 닿는 정치란 환경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공기와 물, 숲과 강 등은 정권의 성격과 부패정도를 알 수 있는 리트머스지이다.

이 글은 재작년을 기준으로 쓰였다. 하지만, 원전이 있고, 태양광이 있고, 삼평리가 있고, 강정마을이 있다. 구의역 노동자, 특성화고 학생, 무수히도 죽어간 노동자들이 또한 있다.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나는 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대구 용계동, 저탄장 옆, 레미콘 공장 옆, K2 공군기지 아래, 대구 국제공항 아래 산다. 이 모든 것들과 나란히. 이 좌표엔 먼지와 소음과 우리 집이 있다. 그 옆에 사람이 있다. 이웃이 산다. 아이들이 숨을 쉰다. 그래, 유치원이 있다. 고등학교가 있다. 지금, 여기에.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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