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 공부하기로 한 내가 활동가가 된 친구에게 전한 편지
내가 그의 인생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었던 기제는 내가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에 있다. 나는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걸었다. 그는 내 앞으로, 쏜 화살이 날아가듯, 쏘아질 때의 집념을 그대로 자신 안에 머물게 한 채 날아가고 있다. 활시위를 당긴 자와 날아가는 화살이 운명처럼 묶여있다는데 긴말은 필요 없다. 하지만 운명은 중력이지 화살이 올라탄 궤적과 그것 위로 넘실대는 바람은 아니다. 내가 그저 바람 탓을 할 때, 또 내가 아픈 손가락 탓을 할 때, 내가 거짓으로 화살을 뽑아 매만졌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잠깐만 멈추어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내가 그의 인생을 논하면서 처음 활시위를 가득 당긴 자를 궁금해할 때,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기 자신을 쏘아버림으로써 대답했다. 쏜 자도 당신이오, 날아가는 자도 당신이니, 적중시킬 대상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도 파괴를 꿈꿔 버릇하는 영웅은 없었다. 그는 운명처럼 날아가버렸다. 그와 같은 사로에 서있던 나다. 우리에겐 한차례 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기우뚱 기울었다. 나는 빈 시위를 당겼고 아무것도 쏘지 않았다. 심지어 빈 시위를 놓지도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버림으로써 말 그대로 박혀버렸다. 이것이 명령을 어긴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인 셈이다.